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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동서양 문화/역사기행
· ISBN : 9791171650286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25-09-25
책 소개
경극에서 옥기까지, 중국 기예의 정수와 그에 얽힌 이야기의 새로운 발견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얼굴이 바뀐다. ‘아니, 어떻게 저런 일이…….’ 어디 그뿐인가. 배우가 등장하여 동작과 말로 연기를 하면 무대의 시공간이, 풍경이 바뀐다. 그냥 서 있기조차 힘든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서는 물구나무를 서거나 결투를 벌이고, 병풍 뒤에서는 밤중에 한바탕 일을 벌이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둥둥둥…… 춘절이면 곳곳에서 역동적인 사자춤 공연이 펼쳐지고, 어둠이 깔린 강에서는 달의 여신이 춤을 추고 어부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편 그림 한 장 속에 행복한 삶에 대한 염원을 담아내고, 베틀 앞에 앉은 여인은 수수께끼와 같은 시간의 문양을 짜 넣는다. 도공들은 선명한 푸른빛을 내기 위해 불을 적절히 조절하고 회청 안료로 수많은 실험을 거듭하며 혁신적인 자기를 생산하고, 옥공들은 투명하고 아름다운 빛깔의 돌을 갈고닦아 군자의 덕목에 비유되는 자태의 옥기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중국에는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문화 전통과 그 산물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중국이 ‘기예의 나라’로 불리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이 책은 중국 기예의 기원과 유래, 속뜻과 특징을 탐색해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중국 문학과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활발한 연구와 교육 및 저술 활동을 하는 열여섯 명의 중국 문학 연구자가 중국 기예라는 미지의 이야기를 풀어보기 위해 힘을 모은 것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극으로 자리 잡은 경극부터 ‘천극의 꽃’이라 불리는 변검, 줄 하나에 의지해 공중을 날아다니는 서커스,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장엄한 실경공연 등과 같은 무대 위 공연 예술부터 세시절기의 염원을 담은 연화, 화려한 조형의 면소, 장인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자기와 옥기 등 손끝에서 탄생하는 공예 예술까지 이 책에서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는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방편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각별하게 와 닿는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전통 기예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그리고 더 넓게는 전 세계의 문화예술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중국 전통 기예의 특징 중 하나는 민간에서 성행하고 전승되었다는 점이다. 각각의 기예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세계가 공인하는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기까지는 무명의 예인과 배우, 도공, 시골 아낙네 등의 굳건한 의지와 고군분투하는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그들의 이야기는 기예의 역사를 대변해줄 뿐만 아니라 전통 문화예술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서로 다른 지역, 문화, 민족 간 이동과 교류가 기예의 발전을 추동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새롭게 꽃피우거나, 어떠한 계기로 이질적인 요소가 유입되어 융합되는 것은 곧 인류 문화의 발전 법칙이기도 하다. 대륙에서 섬으로 건너간 포대희를 비롯해 아시아 각국의 다채로운 사자춤, 유럽으로 수출된 도자기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대 사회로 들어서면서 기예가 전통을 고수하기보다는 새로운 변신을 모색하는 양상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서커스와 스토리의 결합,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공연, 굿즈 상품 출시와 다양한 매체로의 확장, 전통 공예품의 관광 상품화 등은 중국 기예가 나아갈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쉽게 믿기지 않아서… 감탄하고 열광하고 즐긴다
화려하고 장엄한 무대 뒤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꿈틀대고 있을까?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부분, 즉 공연 예술과 공예 예술로 나뉘어져 있다. 공연 예술로는 경극, 변검, 공중서커스, 그림자극 피영희, 구기, 탄사, 사자춤, 실경공연, 공연 「웨둥둔황」, 타이완의 포대희이고 공예 예술로는 연화, 전지, 면소, 직금, 청화백자, 옥기이다.
그중 18세기 후반 베이징에서 탄생한 경극은 우리에게도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중국의 전통극으로, 이 책에서는 그 대표 작품을 살펴보고 유명 경극 배우인 메이란팡과 멍샤오둥, 그리고 경극 배우가 되는 과정, 상징화된 무대 위의 동작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어 변검에서는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는 주요 기법과 전승 과정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공중서커스에서는 고대 문헌에 나타난 서커스의 형태와 스토리가 더해진 근대적 서커스를 비교하며 살펴본다.
한편 남녀노소 누구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즐기는 중국 기예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그림자극 피영희, 목소리 하나로 자연과 일상생활 속의 모든 소리를 모사하는 구기, 강남의 풍광과 잘 어울리고 규방의 여인들에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였던 탄사, 예인의 손바닥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교한 인형극인 타이완의 포대희 등이다.
역동적이고 장엄하고 화려한 공연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예로는 사자춤과 실경공연, 그리고 공연 「웨둥둔황」을 꼽을 수 있다. 먼저 사자춤에서는 그 유래와 전승 과정, 다양한 동작과 모습 속에 담긴 의미 등을 하나하나 풀어헤쳐 이야기한다. 자연을 무대 삼아 장엄하게 펼쳐지는 실경공연에서는 대표적인 작품인 ‘인상 시리즈’를 중심으로 실경 서사의 매력을 톺아보고 2009년 이후 한국에서도 막을 올린 실경공연 작품까지 아우른다. 중국과 서역의 음악을 융합하여 새로운 예술 경지를 펼친 소지파의 일생을 감동적으로 그린 공연 「웨둥둔황」에서는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옛이야기가 어떻게 지역 예술과 경제를 살리는 문화관광산업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거친 손끝에서 탄생한 우아한 자태에 한껏 매혹되다
삶의 희로애락을 담고 앞으로의 행복을 염원하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서로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크고 작은 무대 위 공연과 달리, 우아한 자태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공예 예술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매력을 품고 있다. 더욱이 각각의 작품에 내재된 상징적 의미와 개성 넘치는 표현, 그리고 그에 얽힌 이야기는 결코 범상치 않다.
그러한 공예 예술 중에서 새해를 맞아 복을 기원하는 그림인 연화, 삶의 막힌 부분을 뚫고 고통과 슬픔을 잘라내며 새로운 희망을 이어온 전지, 화려한 조형미와 달콤한 맛으로 다양한 형상을 빚어내는 면소는 액운을 물리치고 소망을 담는 대표적인 기예이다. 먼저 수백 년 동안 부귀, 장수, 다산, 행운 등을 상징하는 요소를 담아온 연화는 민족 신앙과 사상을 녹여내는 사유 공간으로 대중에게 사랑받았지만 한편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놓였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 책에서는 연화의 기원과 상징적 존재들, 그리고 문화대혁명 시기와 현대에 전통 연화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본다. 이어 인물, 화초, 동물, 산수풍경, 글자 등의 문양을 만들어 붙이면 마법처럼 소망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전지에서는 초기 형태부터 ‘꽃을 자르는 여인’, 그리고 최근의 NFT 작품으로의 변화 사례까지 현대에 그 전승과 보존에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단순히 시각을 즐겁게 하는 디저트로 알려졌을 뿐 별달리 주목받지 못했던 면소에서는 고대 중국 문화의 이야기를 통해 유구히 이어져온 면소의 가치를 탐색하고 그 아름다움을 감상해본다.
다른 모든 기예도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빛나는 예술 작품이 탄생하는 분야는 직금과 청화백자, 옥기 공예이다. 베틀에서 작업하는 이름 없는 시골 아낙네의 모습이 떠오르는 직금에서는 고대 기록을 바탕으로 베 짜는 작업, 소수민족의 전통 등을 이야기하고 청화백자에서는 어떻게 전 세계 사람들이 청화백자에 매료되었는지, 코발트색 안료가 어떻게 이슬람 문화권에서 중국으로 유입되었는지, 유럽의 왕실에서 직접 도자기를 대량 생산하게 된 내막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고래로 식을 줄 모르는 중국인의 옥 사랑과 그 신묘한 형태를 둘러싼 이야기를 비롯해 각별히 비취옥을 좋아해 보석방까지 두었던 서태후와, 그녀 사후에 벌어진 도굴 사건 등도 재미있게 읽힌다.
목차
•서문
[공연 예술]
01 삼라만상을 무대 위에 펼쳐라 _경극│홍영림
02 찰나의 기예 _변검│박계화
03 하늘에서 펼쳐지는 예술 _공중서커스│정민경
04 빛과 그림자, 그림자에서 빛으로 _그림자극 피영희│김명신
05 얼굴 없는 배우의 천의 목소리 _구기│이민숙
06 강남의 선율에 취하다 _탄사│김지선
07 역동적 몸짓에 담긴 소망과 기원 _사자춤│장미경
08 천하비경을 무대 삼은 뮤지컬 _실경공연│안영은
09 뉴미디어와 전통문화의 만남 _공연 「웨둥둔황」│송정화
10 손안의 작은 우주, 그 무한한 이야기 _타이완의 포대희│전주현
[공예 예술]
11 한 장의 그림에 담긴 천년의 축복 _연화│이현서
12 소망을 담은 1만 컷의 향연 _전지│고진아
13 손끝에서 이어온 전통, 맛과 색의 미학 _면소│이연희
14 혼과 인내로 기나긴 시간을 짜내다 _직금│이주해
15 세상을 매혹시킨 블루앤화이트 _청화백자│송진영
16 옥저룡에서 취옥배추까지, 신묘한 보석 _옥기│이윤희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변검은 단순히 얼굴을 바꾸는 잔재주에 그치지 않는다. 얼굴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얼굴에 드러난다. 그 점에 착안하여 눈에 보이는 얼굴 표정의 변화를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안한 예술적 장치가 바로 변검인 것이다. 얼굴의 변화는 곧 감정과 내면의 변화이다. 관객들에게 놀라움과 재미를 선물하는 변검은 이러한 숨김과 드러냄의 미학이 담긴 전통 기예라고 할 수 있다. [02 찰나의 기예 _변검]에서
구기는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의 호응도와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제공되는, 현장성이 강조되는 기예이다. 그래서 텍스트가 따로 없고 이를 알려주는 스승도 제자도 찾기 힘든, 전승이 어려운 기예이다. 하지만 구기는 세상에서 가장 신비롭고 따스한 무기인 목소리 덕분에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사람은 본래 놀이하는 존재, 이른바 ‘호모 루덴스’라고 하는데, 정말로 누구나 놀이를 향한 욕구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생존 활동과 달리 놀이에는 자유로움, 여유와 휴식, 즐거움이 묻어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고단한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자기만의 재미를 추구하거나, 함께 모여 기예나 공연을 보며 위로를 받는 것 같다. 목소리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훔치고 홀리는 구기도 그중 하나다. 늘 이렇다 할 스승과 제자가 없다고 안타까워하지만, 구기의 생명력은 놀이가 주는 자유와 즐거움을 사랑하는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05 얼굴 없는 배우의 천의 목소리 _구기]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