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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43103507
· 쪽수 : 351쪽
책 소개
목차
첫 번째 이야기...... 2와 2분의 1-차현숙
두 번째 이야기...... 양갱-정지아
세 번째 이야기...... 울산엄마-정길연
네 번째 이야기...... 안개 속의 과녁-박정요
다섯 번째 이야기....... 산장카페 1km-권지예
여섯 번째 이야기.......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은미희
일곱 번째 이야기....... 병든 애인-배수아
여덟 번째 이야기....... 그림자 여행-서하진
아홉 번째 이야기....... 머물고 싶은, 떠나고 싶은-이청해
저자소개
책속에서
선인장은 베란다에 놓여 있고 무열은 주방에서 치즈를 넣은 오믈렛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무열의 아들 군에게 스웨터와 코트를 입히고 우유를 마시게 했다. 군은 여섯 살이었다. 결혼이 갑자기 실패로 끝나고 만 다음 무열은 군을 맡아서 돌봐 줄 시설을 구하기 위해서 별 고생을 다 했다. 24시간 운영하는 탁아소를 간신히 찾아냈을 때 이제 한숨 돌리겠구나 했는데, 아이는 위탁되는 물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군은 밤이나 낮이나 울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했고, 보모들을 괴롭혔고, 탁아소에서 주는 밥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상사들과 술을 마시거나 지방으로 출장을 가 있거나 월요일 아침 일곱 시의 미팅에 참석해 있는 무열의 전화기가 사정없이 울리게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무열은 군을 힘껏 때렸다. 그래서 여섯 살 난 아이가 엄마를 찾아간다고 가출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군 때문에 무열도 속이 상했다. 그러나 무열은 여섯 살 난 아이가 엄마에게서 바라는 것이 되어 줄 수는 없었다. 삼 개월 동안의 그런 처절한 전쟁 같은 얘기를 다 쏟아 놓은 다음에 무열은 한숨을 쉬었다.
“군은 보육 시설을 싫어하는 거야. 그러니까 심술을 부리는 거지. 자기가 나를 괴롭힐수록 엄마가 빨리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어린 게 영악하기만 해서 잔머리를 굴리고 있어. 미치겠다. 나는 자정 전에는 집에 올 수가 없는데."
“글쎄. 난 너보다 빨리 퇴근하니까, 가끔이라면 아이를 봐 줄 수는 있어."
나는 귀를 만지면서 마침내 이렇게 말해 주고 말았다.
“그래 준다면 내가 너에게 선인장을 줄게." - '병든 애인(배수아)' 중에서
남편과 난 아주 평범하고 평온한 부부였어요. 마치 ‘사랑의 추억’에 나오는 쟝과 마리처럼. 그에게 여자가 생긴 걸 알고부터 내 안에 그렇게 큰 분노가 숨겨진 걸 알고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나였으니까요. 남편은 우유부단했어요. 우유부단함, 그것은 남자로서 취할 수 있는 최악의 방법이었어요. 나는 견딜 수가 없었지만, 남편은 여자와 헤어지는 것도 이혼도 원치 않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는 남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내 마음이 변하는 것을 느꼈지요. 난 이미 오래전부터 남편을 용서하고 있었던가 봐요. 그 말을, 그 표현을 못했던 것뿐이지. 폭우가 쏟아지던 밤, 남편의 차가 교량을 들이받으며 범람하던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이제는 난 남편을 용서하고 좀 더 평안해졌을까요? 아니, 남편의 시신을 강물 속에서 찾아내기라도 했다면 지금의 내가 좀 더 달라져 있을까요? 난 그날 남편이 내게 오고 있는 줄도 몰랐지요. 그렇게나 비가 쏟아지는 날 말이에요. 남편을 용서할 수 없어 뛰쳐나왔던 내게, 갑자기 왜 남편은 그 새벽에 나를 향해 차를 몰고 왔던 걸까요? 참 이상한 일이죠? 왜 또 그 시간에 나는 잠들지 못하고 그를 용서한다는 편지를 썼을까요…… 그 편지란 어쩌면 내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쓴 안간힘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새벽, 남편은 홍수가 난 강물로 그렇게 사라졌어요. 그러니 시간은 거기서 영원히 멈추어버린 채 나는 남편을 영영 용서할 수 없게 되어 버렸지요. 그것이 더 큰 고통이 되어 내게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아아, 결국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받는 가장 큰 천형이에요. - '산장카페 설국 1km(권지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