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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헨리, 다자이 오사무, 루쉰, 막심 고리키, 미하일 숄로호프, 프란츠 카프카, 기 드 모파상, 아리시마 다케오 (지은이), 김난령, 유소영, 이항재, 이재필, 권일영, 정숙현, 국세라 (옮긴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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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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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가족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러시아소설
· ISBN : 9788992037815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11-07-01

책 소개

'테마명작관' 시리즈. 이 시리즈는 각권의 테마를 설정, 그에 맞는 동서양의 고전 명작들을 골라 실은 것이 특징이다. 한 권의 책에서 같은 주제이지만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다른 여러 작품들을 부담없이 골라 읽는 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거장들의 문학세계까지 접할 수 있다. 그 두 번째로 오 헨리, 숄로호프, 카프카, 아리시마 다케오, 루쉰, 다자이 오사무, 고리키, 모파상이 들여다본 가족 이야기이다.

목차

인생유전(오 헨리)
배냇점(숄로호프)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카프카)
내 어린것들에게(아리시마 다케오)
형제(루쉰)
꽃잎 진 벚나무 너머로 들려오는 이상한 휘파람(다자이 오사무)
할아버지 아르히프와 룐카(고리키)
쥘르 삼촌(모파상)

저자소개

오 헨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미국 단편소설 작가로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이고,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즈버러에서 내과의사인 아버지 알게몬 시드니 포터와 어머니 메리 제인 버지니아 와인 포터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어려서 양친을 잃어 숙모가 교사로 있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882년 텍사스로, 1884년에는 오스틴으로 이주하면서 목장 관리, 제도사, 기자, 은행원 등의 직업을 전전하였다. 1887년 아솔 에스테스와 결혼했으며, 1891년 오스틴은행에 근무하면서 아내의 내조를 얻어 주간지를 창간했으며, 지방신문에 유머러스한 일화를 기고하는 등 문필생활을 시작하였다. 1896년 2월 은행 공금횡령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온두라스로 도피했으나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체포되었다. 1898년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교도소의 병원에서 약제사로 일하면서 딸의 부양비를 벌기 위해 글을 썼고, 즉각 잡지 독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었으며, 출감하면서 이름을 오 헨리란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1903년 12월부터 1906년 1월까지 뉴욕의 《월드(World)》지에 매주 글을 기고하였다. 최초의 소설집 《캐비지와 왕(Cabbages and Kings)》(1904)을 시작으로, 《400만(The Four Million)》(1906), 《손질 잘한 램프(The Trimmed Lamp)》(1907), 《서부의 마음(Heart of the West)》(1907) 등의 단편집을 계속해서 출간했다. 헨리의 말년은 악화된 건강, 금전상 압박과의 싸움, 알코올 중독 등으로 얼룩졌다. 1907년에 한 재혼은 불행했다. 1910년 6월 5일, 과로와 간경화, 당뇨병 등으로 뉴욕 종합병원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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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9년 일본 아오모리현 기타쓰가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 명망 있는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랐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1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였다. 선택받은 환경에 뛰어난 머리까지 타고났지만, 서른아홉 해의 짧은 생애 중 다섯 번 자살을 기도했다. 스무 살이던 1929년 칼모틴을 복용한 후 의식불명에 빠졌던 것을 시작으로, 1930년에는 술집 종업원 다나베 시메코와 가마쿠라 바다에 함께 투신했다. 그러나 다나베만 사망하고 홀로 살아남아 자살방조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광대의 꽃〉(1935)은 대표작인 〈인간 실격〉(1948)의 모태이자 이때의 자책감을 드러낸 작품이다. 〈도쿄 팔경〉(1941)에도 이때의 일이 자세히 서술돼 있다. 좌익 운동을 하며 유치장을 들락거리던 다자이는 〈교겐의 신〉(1936)에 그려진 대로 1935년 가마쿠라에서 목을 매 세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미수에 그쳤지만 맹장염 수술 후 진통제로 쓰인 파비날에 중독되었다. 약값을 대기 위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에 욕심을 냈지만 실패하고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거기에 약혼 관계였던 게이샤 오야마 하쓰요와 절친한 친구의 불륜을 눈치채고 큰 충격을 받았다. 1937년 다자이와 오야마는 미나카미 온천에서 칼모틴을 먹고 네 번째 자살을 기도하지만 둘 다 살아남았고, 이때의 일은 〈우바스테〉(1938)에 녹아들었다. 1948년 결핵 증세로 인한 객혈이 심해진 다자이는 불륜 관계였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마가와조스이에 몸을 던져 함께 생을 마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자살의 성공이었고, 두 사람의 사체는 기모노 허리띠에 묶인 채 다자이의 생일인 6월 19일에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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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지은이)    정보 더보기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1881년 저쟝 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의 투옥과 아버지의 죽음 등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난징의 강남수사학당과 광로학당에서 서양의 신문물을 공부했으며, 국비 장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다. 1902년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 학교에서 의학을 배웠다. 그러다 환등기에서 한 중국인이 총살당하는 장면을 그저 구경하는 중국인들을 보며 국민성의 개조를 위해서는 문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도쿄로 갔다. 도쿄에서 잡지 《신생》의 창간을 계획하고 《하남》 에 「인간의 역사」 「마라시력설」을 발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1909년 약 7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항저우 저쟝양급사범 학당의 교사를 시작으로 사오싱, 난징, 베이징, 샤먼, 광저우, 상하이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신해혁명 직후에는 교육부 관리로 일하기도 했다. 루쉰이 문학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18년 5월 《신청년》에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이라 일컬어지는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이다. 이때 처음으로 ‘루쉰’이라는 필명을 썼다. 이후 그의 대표작인 「아큐정전」이 수록된 『외침』을 비롯하여 『방황』 『새로 엮은 옛이야기』 등 세 권의 소설집을 펴냈고, 그의 문학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잡문(산문)집 『아침 꽃 저녁에 줍다』 『화개집』 『무덤』 등을 펴냈으며, 그 밖에 산문시집 『들풀』과 시평 등 방대한 양의 글을 썼다. 루쉰은 평생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분노하고 저항했는데, 그 싸움의 무기는 글, 그중에서 잡문이었다. 마오쩌둥은 루쉰을 일컬어 “중국 문화혁명의 주장主將으로 위대한 문학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 혁명가”라고 했다. 마오쩌둥의 말처럼 루쉰은 1936년 10월 19일 지병인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활발한 문학 활동뿐만 아니라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 문학단체 조직, 반대파와의 논쟁, 강연 활동을 펼쳤다. 이를 통해 중국의 부조리한 현실에 온몸으로 맞서 희망을 발견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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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심 고리키 (지은이)    정보 더보기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자란 고리키는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자란 고리키는 여섯 살 때 글을 배우고, 1877년 1월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외할아버지가 파산하는 바람에 열 살이 되던 해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1881년 ‘선’이라는 배에서 접시닦이를 하던 그는 글을 모르는 주방장 스무리에게 책을 읽어 주며 책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고골, 네크라소프, 뒤마, 발자크, 플로베르 등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그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힘든 노동과 미래에 대한 절망을 느낀 그는 1887년 19살이 되던 해에 권총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로 인해 만성적인 폐결핵을 앓게 된다. 그 후 고리키는 코롤렌코의 서기로 일하게 되는데, 이때 자연과학, 니체 이론 등을 공부하고, 1891년 러시아를 여행하며 칼류즈니를 만나 그의 권고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1892년 9월, ‘막심 고리키’라는 필명으로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하며 등단한다. <마카르 추드라> 이후, 여러 단편들을 계속해서 발표하던 고리키는 여러 신문에 평론이나 칼럼을 쓰며 정치 문제를 다루게 된다. 1898년에는 단편 20편과 수필을 모은 책 ≪수필 및 단편집≫을 출간해 문학적 명성을 얻었으나, 지속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해 경찰의 감시를 받는다. 고리키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가열되는 학생 데모와 파업을 봉쇄하기 위해 학생들을 탄압하는 정부를 비파해 세 번째로 수감된다. 톨스토이는 그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고리키는 감옥에서 <바다제비의 노래>를 발표해, 이 작품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혁명의 노래처럼 불리게 된다. 1902년 ≪소시민≫과 ≪밑바닥에서≫가 초연되고, 1904년 ≪별장족들≫을 저술하며 문학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1905년 1차 혁명을 목격하고 차르 정부를 비난하고 결국 유형을 당한다. 1906년에는 차르 정부의 러시아 차관을 차단하는 활동을 해 러시아로의 귀국이 허용되지 않아 1913년까지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에 정착한다. 1913년 로모소노프 가문 300주년 기념 특사로 사면을 받은 고리키는 페테르부르크로 가 문학·정치 활동을 계속하다가 다시 외국으로 나가기를 권유받게 되며, 1913년 영구 귀국 할 때까지 이탈리아의 소렌토에 살게 된다. 다난하고도 복잡한 삶을 살아 온 막심 고리키는 1936년 6월 모스크바 근교의 별장에서 68세의 일기로 자신의 생애를 마쳤다. 이틀 후 스탈린 등의 국가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국장으로 그의 장례가 치러졌고, 그의 시신은 크레믈 벽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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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숄로호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5년 5월 11일(양력 5월 24일)에 돈 강 중류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볼셰비키 혁명과 내전으로 인해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교사, 회계원, 사무원, 저널리스트로 일하다가 1922년에 모스크바로 가서 주택 관리부 회계원이 되었다.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하여, 1923년 9월 19일자 <청년 프라브다>에 소품 「시험」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1925년에는 「배냇점」을 비롯하여 자기가 태어난 돈 강 유역을 배경으로 주로 내전의 비극을 다룬 단편들을 발표했다. 그 후 1차 세계대전, 볼셰비키 혁명, 내전에 휩쓸린 돈 강 카자크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4부작 <고요한 돈 강>(1928-1940)과 볼셰비키 혁명 이후 농촌의 집단화 과정을 그린 <개간된 처녀지>(1932~1960)를 완성했다. 혁명과 농업 집단화에 대한 불분명한 입장 때문에 출판 지연이나 부분적인 수정이라는 수난을 겪지만 스탈린이 숄로호프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그는 소비에트 문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발돋움 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종군기자로 전선을 누비면서 많은 기사를 썼고, 이때의 경험으로 르포 소설 <그들은 조국을 위해 싸웠다>(1943~1969)와 <인간의 운명>(1957)을 썼다. 1965년에 <고요한 돈 강>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32년 이후 공산당원이 된 숄로호프는 현실 정치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1984년 2월 21일 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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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프라하 법과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난 후, 1년 동안 프라하의 형사 법원과 민사 법원에서 실무를 익혔고, 일반보험회사와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 취직했다. 재해 예방 부서의 중요하고 높은 지위에서 활동하면서 상사와 부하로부터 두루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직업과 문학적 소명 사이의 갈등 때문에 몹시 시달리면서도 그는 시민적 직업의 요구를 회피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신념을 지켰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미완성 작품 〈시골의 결혼 준비〉를 썼다. 1909년에 그는 잡지 〈히페리온〉에 이미 1904년과 1905년에 쓰인 〈어느 투쟁의 기록〉에서 두 개의 대화를 발췌해서 출판했다. 1910년에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는 그에게는 성찰의 형태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문학적 창조물들, 즉 형상, 비유, 이야기의 형태를 지닌 자기 해명과 자기 형성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1913년 단편집 《관찰》을 출판했다. 1914년 장편소설 《실종자》를 집필했다. 1912년단편소설 〈선고〉를 썼다. 그 직후 단편소설 〈변신〉을 창작했다. 1914년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아 〈유형지에서〉를 썼다. 거의 같은 시기에 장편소설 《소송》을 쓰기 시작했다. 1915년에는 1913년에 출판된 《화부》(장편소설 《실종자》의 첫 장)로 폰타네 상을 수상했다. 1916년과 1917년 창작한 단편들을 모아 《시골 의사》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1922년 ‘밀레나 위기’ 동안에 장편소설 《성》을 썼다. 《단식광대》라는 제목을 달고 네 개의 단편이 1924년에 출판되었다. 마지막 단편소설 〈여가수 요제피네〉도 1924년에 집필했다. 카프카는 현실성의 결여, 흥미 추구, 공허함 등을 문학 작업의 위험 요소로 인식했다. 그는 문학 작업의 목표를 대단히 높게 설정했다. 그에게 문학은 ‘예언자적 임무’를 지닌 것이다. 문학은 고차원의 관찰 형식이며, 우연성을 법칙성으로 바꾸고, 진리를 인식하는 데 봉사하는, 일종의 ‘기도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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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50년 프랑스 항구도시 디에프 근처 미로메닐 성城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별거 이후 에트르타에 있는 어머니의 별장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때 경험한 노르망디의 대자연, 시골 사람들의 성정과 습성 등은 그의 작품의 배경과 소재로 자주 나타난다. 고등학교 시절, 작가로서의 삶에 사표가 된 두 명의 스승, 시인 루이 부예와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만난다. 1869년부터 파리 법과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지만, 이듬해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군대에 징집되어 학업을 중단한다. 1871년 7월에 제대하여 1872년 3월 아버지의 소개로 해군성에 취직한다. 1880년 모파상은 에밀 졸라 등과 함께 소설집 『메당의 저녁Les Soirees de Medan』을 출판하고, 여기 수록된 「비곗덩어리」가 프랑스 문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890년까지 10년 동안 300여 편에 이르는 중·단편과 6편의 장편, 5편의 희곡 등을 창작하며 플로베르, 졸라와 더불어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10년은 육체와 정신의 병이 심각하게 나빠진 시기로, 그는 척추 통증과 시력 저하, 불면증 등 갖가지 질병에 시달렸다. 몇 번의 자살 기도 이후 1892년 파리 교외의 정신병원에 보내진 뒤 그곳에서 거의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1893년 7월 6일 생을 마감했다. 사진출처 -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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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시마 다케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0년대 낙관적 이상주의를 구가했던 ‘시라카바(白樺)파’의 동인으로 기독교와 톨스토이,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홋카이도의 삿포로 농학교 시절 금욕적 청교도 생활을 실천하며 완벽한 영적 생활을 추구했지만, 더욱 강하게 솟구치는 성욕으로 인해 그의 내면은 영과 육으로 분열되어 갈등하게 된다. 미국 유학 시기, 영육을 모두 긍정하는 휘트먼에 공감하고 크로폿킨의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한다. 귀국 후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지 못하고 극도의 갈등을 겪게 된다. 마침내 교회를 탈퇴하고 부모에게 상속받은 홋카이도의 방대한 농장을 소작인에게 나눠 주고 문학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펼쳐 나가는 데 매진한다.아리시마는 시라카바파 중에서도 계급적 모순과 여성의 해방 등 사회 문제에 주목했다. 선과 악, 영과 육을 동등하게 긍정하며 자유인을 지향하고 ‘본능적 삶’을 갈구했다. ‘남녀의 사랑이 절정인 순간에 죽는다’고 했던 아리시마는 1923년 유부녀 하타노 아키코(波多野秋子)와 동반 자살한다. 대표작으로 <어떤 여자의 초상(或る女のグリムプス)>(1911∼1913), <선언>(1915), <카인의 후예>(1917), <돌에 짓눌린 잡초(石にひしがれた?草)>(1918), <어린 것들에게>(1918), <태어나려는 고뇌>(1918), ≪어떤 여자≫(19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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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령 (옮긴이)    정보 더보기
번역하고 글쓰고 강의해요. 놀고 걷고 딴짓도 하고요. 외국 문학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30년 이상 했어요. 로알드 달의 《마틸다》,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으로 글쓰기》, 그리고 미카 아처의 《나 진짜 궁금해!》를 번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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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영 (옮긴이)    정보 더보기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다. 현재 제주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번역 강의를 맡고 있다. 옮긴 책으로 『일야서』(공역), 『개구리』(공역), 『모옌 중단편선』(공역), 『9천 반의 아이들』, 『괜찮아, 괜찮아』, 『장미의 문』, 『중국회화사』, 『물고기인 척!』, 『이별 연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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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재 (옮긴이)    정보 더보기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고리키 세계문학연구소 연구교수,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을 지냈고, 단국대학교 러시아어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소설의 정치학』, 『사냥꾼의 눈, 시인의 마음』, 『러시아 문학의 이해』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러시아 문학사』, 『첫사랑』, 『루딘』, 『귀족의 보금자리』, 『아버지와 아들』, 『연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에 대하여』 등이 있고, 러시아 문학에 관한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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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필 (옮긴이)    정보 더보기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러시아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서라벌대학 관광노어통역과 전임강사를 역임했다. 논문으로 〈미하일 불가꼬프의 장편 《거장과 마르가리따 연구》〉, 〈뿌쉬낀 시학 연구〉, 〈미하일 불가꼬프의 《거장과 마르가리따》에 나타난 환상 연구〉, 〈미하일 불가꼬프의 『거장과 마르가리따』에서 마녀 ― 악마의 모티프와 이원성의 테마〉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노름꾼(도스토예프스키, 열린책들, 2000년)》, 《페렐만의 살아있는 물리학, 2012년》, 《페렐만이 들려주는 생활 속 과학이야기, 2012년》, 《푸드트럭, 2015년》,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 2016년》, 《생활 속 과학이야기 2, 2017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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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영 (옮긴이)    정보 더보기
중앙일보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지금은 다른 나라 소설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하라 료의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내가 죽인 소녀》 《천사들의 탐정》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를 비롯해, 히가시노 게이고 《사소한 변화》, 미야베 미유키의 《낙원》, 가와이 간지의 《데드맨》 등을 옮겼다. 그 밖에도 오기와라 히로시, 아비코 다케마루, 유키 신이치로, 모리미 도미히코 등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과 존 딕슨 카가 쓴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등 영미권 작품도 우리말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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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현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7대학에서 〈프랑스 혁명사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달력-영원한 시간의 파수꾼》, 《위대한 기사 윌리엄 마셜》, 《르네상스-라루스 서양미술사2》, 《고전주의와 바로크-라루스 서양미술사3》, 《미켈란젤로-인간의 열정으로 신을 빚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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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라 (옮긴이)    정보 더보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어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독일 뮌헨에서 독일어권 책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을 합니다. 『리고와 로사가 생각 여행을 떠났다』를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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