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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70128122
· 쪽수 : 364쪽
· 출판일 : 2008-01-18
책 소개
목차
제32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선정 이유서
대상 수상작
권여선 - 사랑을 믿다
대상 수상 작가 자선 대표작
권여선 - 내 정원의 붉은 열매
우수상 수상작(등단연도 순)
정영문 - 목신의 어떤 오후
하성란 - 그 여름의 수사
김종광 - 서열 정하기 국민투표ㅡ율려, 낙서공화국 1
윤성희 - 어쩌면
천운영 - 내가 데려다줄게
박형서 - 정류장
박민규 - 낮잠
제32회 이상문학상 선정 경위와 총평
각 심사위원들의 중점적 심사평
김윤식 - '워낙 몰리면'이라는 문제적 설정과 그 소설 문법에 어울리는 아포리즘적 문체
서영은 - 가장 뛰어난 작가의 존재의 깊은 내면 탐색
윤후명 - 사랑에 대한 끈질긴 탐구
권영민 - 디테일의 생략과 숨기기의 방법을 통해 통속으로부터 건져 올린 새로운 사랑의 서사
권지예 - 드러내지 않은 것에서 진실을 보게 하다
대상 수상 작가 권여선의 수상 소감과 문학적 자서전
수상 소감 - 코스모스 꽃밭처럼 아름답게 흔들리고 싶다
문학적 자서전 - 용서를 비는 글
권여선의 작품세계와 작가 권여선을 말하다
작품론 - 사랑의 교환경제와 체념의 윤리 / 김영찬
작가론 - 관계의 탐사자 / 차미령
'이상문학상'의 취지와 선정 방법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친구는 갑자기 국그릇 위로 눈물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친구는 원래 눈물이 많았는데 연애를 하면서 눈물이 더 늘었고, 애인과 결별한 후론 눈물이 거의 주량만큼 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안동소주가 섞인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보이지 않는 건 아닌데 너무 초라하고 하찮아서 어디 한번 보자 하고 덤벼들 마음이 생기지 않는 그런 것들 있잖아. 그런 보잘것없는 것들이 네 주위에 널려 있거든. 대상이든, 일이든, 남아 있는 그것들에 집중해. 집중이 안 되면 마지못해서라도 감정이 그쪽으로 흐르도록 아주 미세한 각도를 만들어주라고. 네 마음의 메인보드를 살짝만 기울여주라고."
그러나 친구는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그녀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녀도 일 년 전, 몸이건 마음이건 어느 쪽으로도 기울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겉으로는 살 맞은 짐승처럼 꿈틀댔지만, 그 안쪽에서는 표면장력으로 팽팽한 절망의 비커를 붙들고 쓰디쓴 고통의 한 방울도 쏟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녀의 내면은 어떤 위로나 이해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고 가히 미친 균형이라 부를 만한 부동의 자세로 육체의 성마른 날뜀을 꼿꼿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시절을 견디자면 어쩔 수 없이 표독해지기 마련인데 그 표독함은 이를테면 맥주에 희석된 안동소주처럼 너무도 특별하고 아름다운 표독함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 그녀는 자기 앞에서 울고 있는 친구 또한 어렴풋이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자신이 이 고통을 누구보다 즐기고 있다는 것을. 오래도록 기념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고통이 사라진 뒤를 더욱 견딜 수 없어한다는 것을.
나는 그녀가 따라놓은 술을 마셨다. 싱거운 맥주 맛 속에 뾰족한 심처럼 독한 안동소주 향이 박혀 있었다. 그녀의 친구는 이미 원경으로 물러났다. 이제 실연의 유대는 그녀와 나, 둘 사이에 맺어졌다.
- 권여선, '사랑을 믿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