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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한국사회비평/칼럼
· ISBN : 9788976827654
· 쪽수 : 312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_ 『부커진 R』 4호 휘말림의 정치학을 발간하며 _ 정정훈 … 4
특집 _휘말림의 정치학
01 휘말린다는 것 _ 도미야마 이치로
02 정치적 사건화와 대중의 흐름?―?매혹과 휘말림, 혹은 센세이션의 정치학에 관하여 _ 이진경
03 동일성의 병리학―호시노 도모유키 『오레오레』에서 자기증식과 해체에 대하여 _ 와타나베 후토시
04 고바야시 마사루의 삶에서 두 번의 휘말림 _ 가게모토 쓰요시
05 탈정체화된 연대와 탈개체화된 연대, 그리고 인민의 생성 _ 정정훈
기획 _ 문화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그 만남과 어긋남
01 “쫄지마!” 또는 정치화의 새로운 명령-어―샌델에서 나꼼수까지 진보적 담론공간의 변환 _ 최진석
02 한국 개신교의 정치적 태도에 담긴 열망 _ 손기태
03 카페와 문화 실천 _ 와타나베 후토시
04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예술과 직접행동의 만남 _ 박은선
05 ‘나는 행운아’ 만들기―이진원 추모공연을 둘러싼 2011년 인디음악신의 문화기술지 _ 홍서연
분석과 비평
01 또 하나의 전장, 일상―도미야마 이치로의 『전장의 기억』 _ 정행복
02 해충의 존재론―편혜영, 『저녁의 구애』 _ 김은영
03 히키코모리적 주체에게 고함 _ 권은혜
04 헤게모니에서 시큐리티로―신자유주의 통치체제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_ 정정훈
기획번역 _모리사키 가즈에를 읽는다
01 두 가지 말, 두 가지 마음 _ 모리사키 가즈에
02 민중이 지닌 이질적인 집단과의 접촉 사상―오키나와·일본·조선의 만남 _ 모리사키 가즈에
필진소개 … 312
저자소개
책속에서
강정마을에는 자신의 일상을 규정하던 질서로부터 벗어나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2012년 3월 구럼비 발파 소식을 듣고 단 며칠만이라도 강정의 싸움에 힘을 보태고 싶어서 비행기를 탔던 많은 이들이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을에 남아서 지킴이로서 살아가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다른 이들은 작년에 있었던 평화비행기를 타고 강정에 왔다가 그대로 눌러 앉은 경우도 있다. 강정마을의 지킴이들 가운데는 이렇게 예기치 않게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이탈하여 예외적 상황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또한 단지 강정마을의 지킴이들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우발적인 마주침에 이끌리어 이러저러한 싸움에 휘말린 이들이 있어 왔다. 평택 대추리에서, 새만금에서, 용산 남일당에서, 두리반에서,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에서 그들은 늘 존재해 왔다.
확실히 좌파들의 정치학이 ‘진실’이란 관념과 쉽게 이별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되는 순간, 대중정치학은 좌우의 방향이나 애초의 목표를 상실한 채, 대중의 흐름 속에 부유하거나 그것에 편승하고 말 것이 분명하다. 대중이 가령 전쟁이나 파시즘, 소수자의 학대나 외부자의 배제 등처럼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대중의 외면을 받거나 대중의 공격과 대면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도 그것과 대결하고 그 방향을 바꾸거나 저지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진보적’이라거나 ‘좌파적’이라는 말과는 무관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진실’이 중요하다고 할 때 그 ‘중요함’이란 거짓된 것을 폭로하고 진실을 드러내는 것 이상임이 강조되어야 한다. 정치적 개입이란 그 진실이 대중적인 힘을 갖게 하는 것이다. 폭로와 의식화만으로 진실은 힘을 갖지 못한다. 문제는 그 진실이 대중의 흐름을 타고 감각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단지 대중의 환상을 깨고 ‘진실’을 드러내고 의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진실’을 대중의 감각 속에서, 혹은 감각적 환상이라고 하면 그 환상 속에서 작동하도록 끼워 넣는 것이고, 그 ‘진실’이 그 감각의 흐름을 타고 흐르게 하며 그 감각을 끌어당기는 특이점이 되게 하는 것일 게다.
정작 문제는 이제 지식(지적 담론)이 권력(현실 정치)과 만나자마자 흡사 허공에서 사라져 버리듯 해체되었다는 점에 있다. 하버드 대학 교수가 떠들고 대중과 지식인들이 한참 시시비비를 따졌어도, MB가 한번 나서서 ‘농치고 나니’ 정의든 뭐든 죄다 순식간에 ‘개 풀 뜯어먹는 소리’가 된 것이다. 지식이든 정의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과거에 지식은 권력에 추종하고 봉사했기에 비난받았지만, 이젠 아예 공중분해되는 운명만 남았다! 마치 “정의란 무엇인가?” 따위의 질문은 잠꼬대에 불과했다는 듯한 이런 사태의 귀결이야말로 니체가 말한 ‘모든 가치의 허무주의’를 가장 적절히 보여 주는 게 아니면 또 무엇일까? MB의 공정 사회론에서 ‘유머에의 의지’를 찾아내 한바탕 웃었다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웃는 와중에 지금껏 한국의 지식 사회를 지탱해 오던 가치 담론이 완벽히 허물어졌다는 사실만은 일단 냉정히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공정 사회라는 한 마디에 갑자기 ‘지옥문’이 열린 것은 아니다. 사실 그 문은 서서히 이미 절반 이상 열린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