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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3838343
· 쪽수 : 308쪽
· 출판일 : 2013-09-06
책 소개
목차
수상작
이틀_윤성희
추천 우수작
쿠문_김성중
하구(河口)_김언수
한파특보_김이설
겨울의 눈빛_박솔뫼
굿바이_윤이형
현장 부재 증명_최제훈
기수상작가 자선작
홀린 영혼_성석제
상황과 비율_김중혁
아… 르무… 리… 오_박민규
수상소감
심사평
작가론
저자소개
책속에서
할머니는 목련 나무가 있는 연립주택에 살았다. 나는 할머니를 그곳까지 배웅해드렸다. “이렇게 큰 나무가 있다니 놀라워요.” 할머니가 목련을 올려다보았다. “뭐가 놀라워. 난 작은 나무들이 더 놀라워. 그건 해마다 자라는 게 눈에 보이거든.” 목련 나무 아래에서 할머니와 나는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에 할머니는 내게 이런 비밀을 하나 알려주었다. 앞으로 회사 땡땡이를 치고 싶은 날이면 132동 104호로 가보라고. 그곳에서 나오는 소리를 몰래 엿들어 보라고. 오전 열 시. 아주 목소리가 아름다운 선생님이 유치원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시간이라고. 나는 일부러 길을 돌아 132동을 가보았다. ‘해님 놀이방’이라는 플래카드가 베란다에 걸려 있었다. 그 아래 누군가의 발자국이 보였다. 민들레꽃이 밟힌 흔적이 보였다. 해님 놀이방의 동화 구연 선생님은 누구일까? 듣기만 해도 저절로 행복해진다는데 과연 그런 게 가능할까?
강 끝에 갈대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갈대들이 강의 끝에 서 있는 건지 바다의 입구에 서 있는 건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저기 보이는 끝까지, 그리고 그 너머까지 다 우리 할아버지 땅이었지, 하고 허대는 말했다. 오래전에 자기들의 땅이었던 곳을, 술값으
로 다 날려버려서 지금은 남의 소유가 되어버린 땅 위를, 별일도 아니라는 듯 씩씩하게 1톤 트럭을 몰고 가는 여자의 얼굴이 아름다워 보였다. 문득 왜 사내들이 여자를 두고 코끼리를 닮았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확실히 그녀는 코끼리를 닮았다. 아니면 코끼리가 그녀를 닮았거나.
옆에서 누가 노려보는 낌새에 M은 흠칫 고개를 돌렸다.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등을 볼록하게 세우고 벽돌담 위에 도사리고 있었다. 대각선으로 뻗은 앞다리에 단단히 힘이 들어가 있는 게 느껴졌다. 메달 달린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길고양이는 아니었다. M은 아기를 어르듯 입으로 쭈쭈, 소리를 내며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고양이가 더욱 납작하게 몸을 웅크리며 수염을 곤두세웠다. 커다랗게 벌어진 두 개의 눈동자가 레이저 포인터처럼 M의 미간에 붙박여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