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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리고 사랑

이별 그리고 사랑

(일본 대표작가 10인이 들려주는 초콜릿보다 더 쌉싸름하고 달콤한 이야기)

다자이 오사무, 모리 오가이, 이토 사치오, 사카구치 안고, 오카모토 카노코, 호리 다쓰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요코미쓰 리이치, 미야모토 유리코, 이와노 호메이 (지은이), 박현석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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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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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이별 그리고 사랑 (일본 대표작가 10인이 들려주는 초콜릿보다 더 쌉싸름하고 달콤한 이야기)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96472094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12-02-15

책 소개

다자이 오사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일본 대표작가 10인이 들려주는 초콜릿보다 더 쌉싸름하고 달콤한 이야기. 문학은 물론 인생의 영원한 화두라 할 수 있는 '이별'과 '사랑'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여 일본 작가 10인들의 단편 및 중편 소설들을 모아 엮었다.

목차

이별
1. 굿바이 ― 다자이 오사무
2. 화원의 사상 ― 요코미쓰 리이치
3. 광야 ― 호리 다쓰오
4. 공사 중 ― 모리 오가이
5. 탐닉 ― 이와노 호메이

사랑
1. 들국화의 무덤 ―이토 사치오
2. 가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3. 사랑 / 사랑이여, 사랑 ― 오카모토 가노코
4. 밤의 어린잎 ― 미야모토 유리코
5. 연애론 ― 사카구치 안고

저자소개

다자이 오사무 (지은이)    정보 더보기
다자이 오사무(일본어: 太宰 治, 1909년 6월 19일 ~ 1948년 6월 13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1936년(쇼와 11년)에 첫 작품집 『만년(晩年)』을 간행하였다. 1948년(쇼와 23년)에 애인 야마자키 도미에(山崎富栄)와 함께 다마가와(玉川) 죠스이(上水)에 투신자살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달려라 메로스(원제: 走れメロス)」, 「쓰가루(津軽)」, 「옛날 이야기(お伽草紙)」, 「사양(斜陽)」, 「인간실격」이 있으며, 사카구치 안고・오다 사쿠노스케(織田作之助)・이시카와 준(石川淳) 등과 함께 신희작파(新戱作派)・무뢰파(無賴派) 등으로 불린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일본어: 津島修治)인데, 필명을 쓴 까닭은 쓰가루 지방(아오모리현 서부) 출신인 스스로가 본명을 읽으면 쓰가루 방언의 영향으로 지시마(チシマ)로 들리지만 이 필명은 방언투로 읽어도 발음이 그대로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1 아버지는 공무로 늘 바빴고 어머니는 병약했으므로, 다자이 자신은 유모 등의 손에서 자랐다. 1916년(다이쇼 5년)에 가나키제일심상소학교(金木第一尋常小學校)에 입학하였다. 4년만인 1922년(다이쇼 11년) 4월에 소학교를 졸업하고 학력 보충을 위해 현지 4개 마을에서 조합으로 세운 메이지고등소학교(高等小學校)에 다시 1년간 통학하였으며, 1923년(다이쇼 12년)에는 아오모리 현립 아오모리중학교(靑森中學校)[2]에 입학하는데, 입학 직전인 3월에 다자이의 아버지가 도쿄에서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어를 전혀 하지 못하면서도 프랑스 문학을 동경해 4월에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불문학과에 입학하지만, 높은 수준의 강의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데다 친가에서 부쳐주는 돈으로 마음껏 방탕하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그에 대한 자기 혐오, 내지 다자이 자신의 처한 위치와 더불어 마르크시즘에 심취해 갔고, 당시 치안유지법에서 단속하고 있던 공산주의 활동에 몰두하느라(다만 공산주의 사상 자체에 진심으로 빠져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강의조차 대부분 출석하지 않았다. 또한 소설가가 되기 위해 5월부터 이부세 마스지(井伏鱒二)의 제자로 들어갔는데, 이때부터 본명인 쓰시마 슈지가 아닌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대학은 거듭된 유급에 수업료 미납으로 제적된다.[5] 재학 중에 만나 동거하던 술집의 여급으로 유부녀였던 18세의 다나베 시메코(田部シメ子)와 1930년 월에 가마쿠라의 고시고에(腰越) 바다에서 동반 투신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시메코만 죽고 다자이는 혼자 살아남았다. 이 일로 다자이는 자살방조 혐의로 검사로부터 조사를 받았지만, 형 분지(文治) 등의 탄원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6] 「인간실격(人間失格)」, 「앵두(櫻桃)」를 마무리한 직후 1948년 6월 13일, 타마가와(玉川) 죠스이(上水)에서 애인 야마자키 토미에(山崎富栄)와 동반자살하였다.[14] 이때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이 사건은 발표 직후부터 온갖 억측을 낳았는데, 도미에에 의한 억지 정사설, 희극 심중 실패설 등이다. 다자이가 생전에 아사히 신문에 연재 중이던 유머 소설 「굿 바이」도 미완의 유작으로 남았는데, 공교롭게도 13화에서 작가의 죽음으로 절필되었다는 데에서 기독교의 징크스를 암시하는 다자이의 마지막 멋부림이었다는 설도 있고, 그의 유서에는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졌다' 등의 취지가 적혀 있었는데, 자신의 컨디션 저조나 다운증후군을 앓는 저능아였던 외아들의 처지에 대한 비관도 자살의 한 원인이 되었을 거라는 설도 있다. 기성 문단에 대한 '선전포고'로까지 불리던 다자이의 연재 평론 「여시아문(如是我聞)」의 마지막회는 다자이 사후에 게재되었다. 유해는 스기나미 구 호리노우치에서 화장되었다. 계명(戒名)은 문채원대유치통거사(文綵院大猷治通居士)였다. 다자이의 사체가 발견된 6월 19일은 공교롭게도 그의 생일이었는데, 죽기 직전에 쓴 단편 「앵두」와도 관련해, 생전에 다자이와는 동향으로 교류가 있던 곤 간이치(今官一)에 의해 '앵두 기일'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날은 다자이 문학의 팬들이 그의 무덤이 있는 도쿄도 미타카시의 젠린사(禪林寺)를 찾는 날이기도 하다. 또한 다자이가 태어난 아오모리 현 카나기마치에서도 '앵두 기일'에 맞춰 다자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는데, 다자이의 탄생지에서 다자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 옳다는 유족의 요망도 있어 다자이 오사무 탄생 90주년이 되는 1999년부터는 「다자이 오사무 탄생제」로 이름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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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오가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문호로, 일본 문학사와 의학사에 동시에 족적을 남긴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다. 에도시대 말 영주의 주치의 가문에서 태어나 엄격한 유교적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한편, 독일 유학을 통해 서구 학문과 예술로 의학적,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이를 일본에 도입하는 데 앞장섰다. 린타로(林太郞)라는 본명으로는 위생학을 전문으로 한 군의관으로 육군 군의총감과 의무국장 자리에까지 올랐고, 퇴역 후에는 넓은 식견을 인정받아 궁내성 제실박물관장 겸 도서관장, 제실미술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오가이라는 필명으로는 번역과 평론을 시작으로 소설, 시가, 희곡 등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일본 근대 문단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요컨대 오가이는 문학자요 의학자며 군인이자 관료로 종횡무진 활약한 일본 근대 지식인이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으로는 「무희」, 『기러기』, 『청년』, 『아베 일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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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사치오 (지은이)    정보 더보기
가인이자 소설가. 본명 고지로(幸次). 지바현 출신. 메이지법률학교(현 메이지대학) 중퇴. 마사오카 시키를 사사했으며, 네기시 단가 모임의 중심적 존재로 활동하며 나중에 잡지 《아시비》, 《아라라기》 등을 발간했다. 《만엽집》 스타일의 사생주의를 주장하며 많은 후배를 길러냈고, 사생주의를 소설로 옮긴 《들국화의 무덤》을 발표해 나쓰메 소세키의 절찬을 받았다. 여기에 수록된 <하구호>는 1907년에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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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구치 안고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본의 문학가. 본명은 사카구치 헤이고(炳五へいご). 다자이 오사무, 오다 사쿠노스케와 함께 일본의 전후 문학을 대표하는 무뢰파(無賴派) 소설가이자 평론가로 평가된다. 본명은 사카구치 헤이고.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에서 태어났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명의 형제 중 열두 번째 아이로 태어난 안고는 어린시절부터 방랑벽과 방황이 심했다. 1919년 니가타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 무렵부터 집과 학교를 싫어해서 수업을 빠지고 홀로 방황하는 날들을 보내다 낙제하게 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발자크 등의 소설을 탐독하며 지내다가 결국 1922년에 퇴학당했다. 그해 가을 상경해 부잔 중학교에 입학했고 에드거 앨런 포와 이시카와 다쿠보쿠 등을 인생의 낙오자로서 사랑하며 그들의 작품을 숙독했다. 막연하게 엄격한 구도자의 삶을 동경하여 1926년, 도요 대학 인도철학윤리과에 입학한다. 불교서와 철학서를 섭렵하는 데 몸을 혹사하며 공부에 매진한 탓에 생긴 신경쇠약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어학을 맹렬히 공부한다. 1930년, 대학을 졸업한 후 동인지 <말>과 <청마>를 창간했다. 1931년 소설가 데뷔. 단편소설들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단편소설 <바람 박사>와 <구로타니 마을>이 소설가 마키노 신이치의 극찬을 받음으로써 신진 작가로 급부상한후 1946년 2차대전이 끝난 후 패전 직후의 시대를 분석한 '타락론'과 '백치'로 당대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작가가 된다. 1931년에 발표한 1932년 작가 야다 쓰세코를 알고 사랑에 빠지지만 1936년 절교한 후 신생을 기하며 교토를 방랑하면서 그녀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눈보라 이야기≫를 썼다. 1947년 가지 미치요와 결혼하고,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과 에세이, 탐정소설, 역사 연구, 문명 비평 르포르타주 등 다채로운 집필 활동을 전개하여 전후의 난세에 문화와 역사 및 사회의 흐름에 대한 대중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추리소설을 좋아했고 직접 [明治開化 新十郎探偵帖]을 쓰기도 했다. 이를 원작으로 한 UN-GO가 애니메이션화되었고, 2020년 5월에 NHK에서 시대극으로 드라마화한다. 그 밖에도 여러 편의 추리소설을 썼고, 매스컴에서 스캔들에 대해 서투른 추측를 하면 아예 내 밑으로 들어와서 추리 소설을 배우라고 일갈한 적도 여러번 있다. 국내에 번역 출판된 작품은 『투수살인사건(投手殺人事件)』, 『난킨무시살인사건(南京虫殺人事件)』, 『그림자 없는 살인(影のない犯人)』, 선거 살인사건, 불연속 살인사건 등이 있다. 시인 나카하라 츄야와 가까웠다. 사카구치 안고는 세무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 경륜 부정 사건 고발, 각성제와 수면제 중독에 의한 정신착란 발작 등 실생활 면에서도 언제나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55년 2월 17일 지방 취재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택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향년 5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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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모토 카노코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오카모토 가노코(岡本かの子)는 1889년 3월 1일, 대대로 막부(幕府)와 번(藩)에 물품을 납품하는 호상(豪商)의 장녀로 도쿄의 다마강(多摩川) 근처에서 태어났다. 선병질(腺病質) 때문에 양부모 집에서 자란 가노코는 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우고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 수업을 듣는 문학소녀였다. 13세 때 여학교 교우회 잡지를 통해 단가를 발표했고 16세 때는 신문 문예란에 투고를 시작했다. 당시 도쿄대학에 다니던 친오빠가 문학 활동을 시작하자 후에 탐미주의 문학의 거장이 되는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가 집에 드나들게 되면서 가노코도 자연스레 영향을 받게 된다. 17세 때 친오빠와 함께 와카(和歌) 작가로 유명한 요사노 아키코(與謝野晶子)를 찾아가 신시사(新詩社)의 동인이 되면서 ≪명성≫와 ≪스바루≫를 통해 신체시와 와카를 발표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오카모토 잇페이(岡本一平)와 21세 때 결혼해 이듬해 훗날 예술가로 명성을 떨치는 다로(太郞)를 낳는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 잇페이는 아사히(朝日)신문사에 입사해 만화를 연재해 독자적인 스타일로 주목을 끌면서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고 부부 사이가 틀어진 가노코는 대학생 호리키리 마사오(堀切茂雄)와 사랑에 빠지면서 남편과 애인이 함께 동거하는 기묘한 부부 생활을 시작했다. 1929년, 남편 잇페이가 런던 군축 회의의 아사히신문 특파원이 되면서 장남 다로와 새로운 애인이자 외과 의사인 닛타 가메조(新田龜三)를 데리고 4년에 걸쳐 파리와 베를린 등지를 돌아다녔다. 1932년 가노코 일행은 미국을 경유해 귀국길에 오르지만 다로는 파리에 남아 추상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가노코는 이때의 심경을 바탕으로 <모자 서정>을 쓴다. 파리에서 돌아온 가노코는 잇페이의 헌신적인 협조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후원에 힘입어 시인과 불교 연구자에서 그토록 염원하던 소설가로 전향한다. 1923년 가마쿠라(鎌倉)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와 만난 일을 소설로 옮긴 <두루미는 병들었다>를 발표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고, 이후 놀라운 속도로 많은 소설을 발표한다. 특히 장편 소설인 ≪생생유전(生-流轉)≫(1940)은 다마강을 무대로 가노코의 어릴 적 추억과 파란만장한 인생 드라마를 생생하게 그린 대표작이다. 1938년 뇌일혈로 쓰러져 요양을 하던 가노코는 1939년 2월 18일 잇페이와 애인 닛타 가메조가 지켜보는 가운데 50여 년의 짧은 생애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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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 다쓰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4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23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만나 1927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사사받았다. 1929년 도쿄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예술파 문학의 영향을 골고루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불안정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신선한 심리주의적 묘사라는 문학 세계를 꿋꿋이 고수했으며, 사랑을 통해 죽음을 넘어선 곳에서 진정한 생을 발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숨기지 않았다. 이를 통해 사소설(私小說) 중심이었던 당시 일본 소설의 흐름에서 ‘지어낸 이야기(픽션)’로 낭만파 문학 형식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쟁 말기부터 결핵 증상이 악화되어 전후에는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로 요양하다 1953년 사망했다. 시의 감수성을 지닌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의 대표작으로는 『성가족(聖家族)』 『아름다운 마을(美しい村)』 『바람이 분다(風立ち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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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2년 일본 도쿄의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1913년 도쿄제국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14년 기쿠치 간, 구메 마사오 등과 함께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하고 〈라쇼몬〉, 〈코〉 등을 발표했는데, 〈코〉가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극찬을 받으면서 문단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합리주의와 예술지상주의의 작풍으로 시대를 풍미했으나 말년에는 자신의 삶을 조롱하는 자조적인 작품들을 많이 썼다. 서른다섯 살 되던 해인 1927년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일본 근대사에서 관동대지진과 견줄 만큼의 사회적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35년 일본 출판사 문예춘추의 사주이자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기쿠치 간이 아쿠타가와 상을 제정, 현재까지도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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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미쓰 리이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8년, 후쿠시마 현(福島縣)에서 태어났다. 1917년 ≪문장세계≫에 <신마(神馬)>를 투고한 것을 시작으로, <활화산>, <불> 등을 발표했는데, 초기 작품에는 사소설적인 소재가 많았다. 이후 <파리>, <태양>, <마르크스의 심판>, <옥체> 등을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신진 작가로서 빛을 발했다. 1928년 이후 <눈에 보인 이>, <신감각파와 코뮤니즘 문학> 등을 통해 유물론적 문학론에 대한 자신의 주장과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한 대항 의식을 표면화했다. 그러나 1930년, 심리와 감각의 얽힘이 두드러진 <새>와 <기계>를 발표함으로써 신심리주의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1936년 유럽 여행 경험을 토대로 서양 사상과 일본의 고신도(古神道), 그리고 과학과 일본 사상을 다룬 장편 소설 ≪여수(旅愁)≫의 신문 연재를 시작한다. 1945년 야마가타 현(山形縣) 소개지에서 패전을 맞이했는데, 그 충격으로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전시하의 답답한 심경을 그린 ≪밤의 구두≫와, ≪우아한 노래≫를 출판한다. ≪여수≫를 미완으로 남긴 채, 1947년 단편 <남포등>을 집필하던 중 위궤양과 복막염으로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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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유리코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9년 도쿄도 출생. 1916년 열일곱 살에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로 데뷔, 천재 작가로 주목받았다. 1919년 미국 유학 중에 만난 언어학자 아라키 시게루와 결혼하지만 1924년 이혼했다. 이후 러시아문학자 유아사 요시코와 공동생활하며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돼 1927년 러시아로 건너갔다. 귀국 후 프롤레타리아 작가로 활약하는 한편 문예평론가인 미야모토 겐지와 결혼했다. 1933년 남편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투옥되었고 자신도 구속과 석방을 거듭했다. 전후 사회상을 여성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그려낸 『노부코』, 『반슈평야』 등 역작을 남겼다. 1951년 1월 21일 쉰두 살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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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노 호메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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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석 (옮긴이)    정보 더보기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와시오 우코, 나카니시 이노스케, 후세 다쓰지, 야마모토 슈고로, 에도가와 란포, 쓰보이 사카에 등의 대표작과 문제작을 꾸준히 번역해 소개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번역한 작품도 상당수 있으며 앞으로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 · 작품을 소개하여 획일화된 출판시장에 다양성을 부여할 계획이다. 또한 일본 역사에 관한 책도 ‘인물과 사건으로 읽는 일본, 칼의 역사’ 시리즈로 구성하여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일본의 역사도 함께 소개할 예정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서 일본인들의 저변에 흐르는 사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시리즈로는 지금까지 『사무라이 이야기』(상·하), 『다이라노 기요모리』,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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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는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기에 눈썹 끝으로 간신히 막은 채 화단 속으로 내려갔다. 그는 무리 진 밤의 꽃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차가운 꽃을 차례차례, 벌레처럼 냄새 맡았다. 그는 냄새를 맡으며 격렬한 기도를 꽃 속에서 하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그녀를 구해주소서. 신이시여, 그녀를 구해주소서.”
그는 앵초를 한 움큼 쥐어뜯어 뺨의 눈물을 닦았다. 달이 뜨기 전으로 바다는 은은하게 흰빛을 띠고 있었다. 저녁 까마귀가 기괴한 곡선을 그리며 화단 위를 날카로운 그림자처럼 날아갔다. 그는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몇 바퀴고 고요한 분수 주위를 슬픔처럼 맴돌았다.
―요코미쓰 리이치 『화원의 사상』 중에서


그리고 이 불행한 여자, 전남편을 스쳐 지나가는 남자라 생각하고 스쳐 지나가는 남자에게 몸을 맡길 때와 같은 체념으로 몸을 맡긴 이 비참한 여자, 이 여자야말로 이 세상에서 자신이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행복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나 여자는 괴롭다는 듯 남자에게 안긴 채 딱 한 번 눈을 커다랗게 떠서 남자의 얼굴을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을 뿐, 점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호리 다쓰오 『광야』 중에서


겨울의 등불을 밝힐 무렵이면 파리의 화실에서 고향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고 적어 보낸 편지를 읽은 나는 바로 이 사람을 깨운다. 평소에는 한번 잠에 들면 좀처럼 일어나지 않던 이 사람도 쉽게 일어난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둘이서 차를 마시는 깊은 밤. 밖에는 희미한 초겨울 삭풍.
―오카모토 가노코 『사랑이여, 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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