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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여행 > 세계일주여행 > 세계일주여행 에세이
· ISBN : 9791186561294
· 쪽수 : 176쪽
· 출판일 : 2016-08-29
책 소개
목차
받침이 없는 이름을 가진 도시에서 / 강윤정
이것은 용龍이 꾸는 꿈 / 강정
꿈, 잠자리, 서커스 / 박연준
역몽버스 / 신해욱
지호 / 요조
그대의 ‘꿈 꿀 권리’ / 위서현
꿈으로부터 온 문장들 / 이제니
Dream of little dream / 장연정
피라미드의 별 / 정성일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당신의 불면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당신은 수화기 너머로 “거기 있어?”라고 물었다. 느낄 수가 없어 답답했다. 그가 거기 있는지. 분명히 거기에 있는지. 낯익은 지명을 들었다. 당신이 물은 건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었다.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 낯익은 지명에 있다는 그가 거기에 ‘있다’는 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느낌이 처음이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당신이 모른다는 것이 잠을 가져갔다. 어깨가 결리고 팔다리가 무거웠다. 당신은 약을 한 알 먹고 휴대전화의 전원을 끈 뒤 다시 누웠다. 시간이 흘렀다. 약을 먹으면 그저 자신이 모르는 사이 시간이 지나갔을 뿐 잠을 잔 것 같지는 않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그래도 지나치게 과장되었던 당신의 심장 박동 소리가 잠잠해졌다. 눈을 떠 휴대전화를 켜보니 세 시간이 지나 있었다. 부재중 전화도 여러 통 와 있었다. 당신을 찾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이미 세 시간 전의 일이었다. 꿈과 꿈이 아닌 어느 경계에 당신은 서 있었다. 없음이라는 게 무엇이냐고,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고 묻던 어느 소설가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은 그 반대다. 당신은 있음이란 게 무엇인지, 당신이 이렇게 불명확하게 느끼는 그의 있음은 있음이 맞는지 묻고 싶었다.
- 강윤정 ‘받침이 없는 이름을 가진 도시에서’ 중에서
천천히 문으로 걸어가 거실을 살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눈앞에 하얀 벽이 나타난 것이다. 원래 이 집엔 없는 벽이었다. 사위가 갑자기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자 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다가가는 만큼 벽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벽과 나 사이 오른쪽 공간이 큼지막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 지점이 갈라지는 것이었다. 발자국 소리는 그 어두운 틈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굉장히 육중하고 과감하지만 경망스럽거나 다급한 느낌은 아니었다. 동굴 속에서 품 넓게 공명하는 덩치 큰 짐승의 발자국 소리 같았다. 뇌리에 문득 커다란 상아를 가진 검은색 매머드가 떠올랐다. 틈을 향해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입구는 어두웠으나 그 어두움이 괜히 친숙했다. 아무것도 식별할 순 없었지만, 뭔가를 의식하고 판단하기 이전에 내가 이미 그 어둠 속 세상을 겪어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분명한 건 없었다. 편안함과 낯섦이 교차하고 있었다. 동시에, 삶과 죽음, 꿈과 현실 따위도 경계 없이 버무려져 어둠 속에 녹아들어 간 것 같았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의 틈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 강정 ‘이것은 용이 꾸는 꿈’ 중에서
싫증이 나서 밖으로 나갔다 돌아왔을 때, 잠자리는 죽어 있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잠자리의 죽음으로 내가 상처받았다고 보기에는 상처가 가벼웠고, 죄책감을 느꼈다고 보기에는 아직 윤리감각이 자리 잡기도 전이었다. 잠자리의 죽음은 그 여행에서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없었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감정의 동요를 느끼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묽은 슬픔이었던 것 같다. 눈에 띄지 않아 또렷하게 볼 순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그게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 하나를 새로 알게 된 것 같았다.
- 박연준 ‘꿈, 잠자리, 서커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