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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72754589
· 쪽수 : 348쪽
책 소개
목차
모르모트 인간-태기수
묘심-양유정
갈라파고스-박형서
고양이 소설엔 고양이가 없다-김이은
캣츠아이 소셜 클럽-김서령
고양이 대왕-김설아
자작 나무를 흔드는 고양이-염승숙
흙, 일곱 마리-명지현
캐비닛, 0913-강진
수요일의 아이-최은미
토미타미-정용준
해설/네 마리 고양이의 몽타주-강지희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래, 한때 나는 고양이였다. 불우한 거리의 고양이였다. 그리고 눈앞의 그는 나를 거둬들여 성범수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여주고, 오랫동안 보살펴주었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인가? 시간은 저 혼자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늘 우리의 선택과 함께 흐른다. 침대 위에 눕기로 결정했다면, 침대 위에 누운 시간이 흐른다. 술을 마시기로 결정했다면, 술을 마시는 시간이 흐르는 것이다. 시간은 늘 그런 방식으로 흐른다. 그리고 한번 흘러간 시간은 돌이킬 수가 없다. -박형서, 「갈라파고스」중에서
박 언니는 몇 번이나 발목을 접질렸다. 10센티 하이힐이라니. 나는 혀를 찼다. 스커트 자락 사이로 언뜻언뜻 비추던 그녀의 흰 발목을 내가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그래, 사실 나도 잊었다. 굽 낮은 플랫슈즈가 바닥을 사뿐하게 딛는 소리가 얼마나 우아했는지 그녀도 나도 다 잊었다. 박 언니는 뒤꿈치와 새끼발가락에 반창고를 붙이고 매일 하이힐을 신었다.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금속 귀걸이는 자꾸 머플러 올에 걸렸다. 스튜디오에는 나와 박 언니 둘뿐이었으므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머플러에 걸린 귀걸이를 빼주어야 했다. 식욕억제제를 먹기 시작한 그녀는 온종일 맥 빠진 얼굴로 앉아 있었다. 어느 날은 한쪽 눈에만 초록색 콘택트렌즈를 끼고 오는 바람에 기겁을 하기도 했다.
“뭐야, 그게!” 놀란 마음에 소리부터 버럭 질렀다.
“오드 아이 몰라? 고양이들 중에는 양쪽 눈 색깔이 다른 오드 아이가 많대. 오묘하지 않아?” -김서령, 「캣츠아이 소셜 클럽」중에서
회장님 댁에 다녀오고 난 지 일주일이 지난 후 회사에서 어머니와 나를 초청했습니다. 이른바 업무 참관이었습니다. 학부모들이 자식의 수업을 참관하듯, 가족들도 가장이 일하는 것을 참관할 권리가 있다나요. 우리는 내심 집에서는 고양이처럼 굴어도 회사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을 기대했으나 당치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보는 줄 알면서도 아버지는 천연덕스럽게 중요해 보이는 서류에 손도장을 찍었으며, 그걸로 부장에게 혼나고도 오히려 그를 넘어뜨리고 배를 깔고 앉아서는 두 손으로 그 얼굴을 찰싹찰싹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두 눈에는 평소 볼 수 없는 장난기까지 가득 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문제아를 둔 부모처럼 내내 한숨을 쉬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김설아, 「고양이 대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