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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처럼 아름다운 수필

시처럼 아름다운 수필

김소운, 나도향, 도종환, 박완서, 성석제, 양귀자, 유안진, 윤오영, 이양하, 이효석, 장영희, 전숙희, 최인호, 피천득, 김진섭, 안병욱, 이문구, 민태원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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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처럼 아름다운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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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시처럼 아름다운 수필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0050073
· 쪽수 : 192쪽
· 출판일 : 2016-10-20

책 소개

감동과 여운이 있는 수필, 시처럼 아름다운 향기가 있는 한국 수필 27편을 엄선해서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묶은 수필집이다. 나도향, 도종환, 박완서, 성석제, 양귀자, 이효석, 장영희, 최인호, 피천득 등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짧지만 긴 여운이 있는 글들이 담겨 있다.

목차

1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
인연 - 피천득
사랑하면 보인다 - 도종환
그믐달 - 나도향
지란지교를 꿈꾸며 - 유안진
가난한 날의 행복 - 김소운
사랑 노래에 사랑은 없다 - 최인호

2 그들이 나를 찾아와 위로해주었으므로
젊은 아버지의 추억 - 성석제
모란봉에 기대어 - 양귀자
방망이 깎던 노인 - 윤오영
설 - 전숙희
모두가 장미일 필요는 없다 - 도종환
한 독자와의 만남 - 최인호
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한마디 - 장영희

3 조그마한 것에서 오는 조그만 기쁨
맛과 멋 - 피천득
생활인의 철학 - 김진섭
낙엽을 태우면서 - 이효석
우리 동네 예술가 두 사람 - 양귀자
트럭 아저씨 - 박완서
조그만 기쁨 - 이양하
행복의 메타포 - 안병욱

4 이 멋진 세상에서
맛있는 책, 일생의 보약 - 성석제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보라 - 장영희
매화찬 - 김진섭
청춘 예찬 - 민태원
신록 예찬 - 이양하
문학이란 무엇인가 - 이문구

저자소개

김소운 (지은이)    정보 더보기
“내 어머니는 ‘레프라’일지도 모릅니다” - 본문에서 김소운은 1908년 1월 5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교중(敎重)이었으나 광복 후에 소운(素雲)으로 개명했다. 진주 재무서 주사였던 아버지 김옥현(金玉顯)은 1909년 의병들에게 친일파로 몰려 피살된다. 어머니는 박덕수(朴德水)는 1912년 재혼해서 러시아로 떠났다. 양친을 잃고 할머니를 비롯한 친척들과 생활하며 진해, 김해, 목포 등으로 계속 거처를 옮겨야 했다. 1916년 불과 아홉 살의 나이에 홀로 평안남도 진남포로 가서 2개월간 체류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절영도소년단 활동이 문제가 되어 옥성보통학교를 중퇴했다. 이듬해 사촌 형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1921년 동경 개성중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1923년 9월 동경대지진 사건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오사카 숙부댁에서 약 반년을 지내다 한국에 돌아왔다. 다음 해 상경하여 오상순, 김범부, 조명희, 변영로 등의 문학인들과 교류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 식민지와 제국을 여러 차례 왕복하는 불안정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김소운은 한국문학을 번역해서 일본에 소개하며 한국인의 문학 정신을 널리 알렸다. 1926년 동경에서 교포 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며 채집한 구전민요를 일본의 시 잡지 『지상낙원』에 연재했다. 이를 바탕으로 1933년 일본 출판사에서 『언문조선구전민요집』을 발간했다. 3천 수가 넘는 구전민요가 실린 700여 쪽짜리 순 한글책이었다. 또한 3년여의 편집과 번역 끝에 1976년 『현대한국문학선집』을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 편찬했다. 호는 삼오당(三誤堂)이며 한국수필사에서 70년대를 대표하는 수필가 중 한사람으로 꼽혔다. 저자는 삼오당의 뜻을 익살스럽게 밝혔다. “첫째로 허다한 나라를 두고 하필이면 이런 나라에서 태어났으니 제1의 과오이고, 인간의 운명이니 감정에 관련된 문필작업 같은 이런 고생길을 택한 것, 이것이 둘째 과오. 30전후에 죽어서 애석하다는 소리나 들어볼 것이지 죽지 않고 살아 이게 무슨 과오일까 보냐?” 1952년 베니스 국제예술가회의에 한국 대표 자격으로 참가할 정도로 국내 문단내 입지가 높았다. 『가난한 날의 행복은』 70년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고 『목근통신』은 대학 교재로 사용되었다. 또한 원작보다 좋은 일본어 번역 실력 덕분에 1977년 한국번역문학상을, 1980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향토와 조국의 문화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 담을 글을 쓴 김소운. 근엄하면서도 격정적인 성격으로 세상과 타협하기를 거부했다. 모순과 상처투성이인 인간을 그려내며 성찰의 눈을 거두지 않았다. 1981년 11월 향년 74세에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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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향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2년 서울 출생. 본명 경손(慶孫), 호 도향(稻香), 필명 빈(彬)을 사용했다.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하고 경성의전(京城醫專)에 다니다가 도일한 후 학비가 없어 귀국하였다. 1921년 단편 「추억」을 「시민공론」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 이상화, 현진건,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파라는 낭만파를 이루었다. 이후 홍사용, 박종화 등과 문예 동인지 「백조」를 창간하고 『젊은이의 시절』등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1923년에 『17원 50전』 『행랑 자식』을 『개벽(開闢)』에, 『여이발사(女理髮師)』를 『백조』에 발표하였고, 1925년에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를 발표함으로써 민중들의 슬프고 비참한 삶에 촛점을 맞춘 작품을 주로 선보이다가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은 물론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여 주는 작품까지, 폭넓은 작가세계를 보여주는 완숙한 경지의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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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충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충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신석정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2006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자연을 인간처럼 이해하고, 인간을 자연처럼 이해하는 시인으로 알려진 그의 시와 산문에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고 맑은 통찰의 눈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시집으로 《접시꽃 당신》, 《흔들리며 피는 꽃》, 《해인으로 가는 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 등이 있습니다. 동시집 《누가 더 놀랐을까》, 동화 《나무야, 안녕》, 그림책 《도종환 시인의 자장가》, 《병아리 싸움》 등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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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글)    정보 더보기
1931년에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소학교 입학 전 어머니, 오빠와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숙명여고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육이오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53년 결혼해 평범한 주부로 살며 1남 4녀를 두었고,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롭지만 따듯한 시선과 진실된 필체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던 1988년 하나뿐인 아들을 갑작스럽게 잃는 참척의 고통을 겪었고, 이를 일기로 써 내려간다. 그 일기를 엮은 『한 말씀만 하소서』는 자식을 잃은 애끓는 마음과 세상과 신을 향한 원망이 날것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깊이 위로해 준다. 더 나아가 삶을 향해 다시 발을 내딛는 모습은 인간 존재의 의미까지 생각하도록 이끈다. 2011년 1월 담낭암으로 타계할 때까지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소설과 15편의 장편소설을 쓰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으며, 이외에도 동화·산문집·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두루 남겼다. 특히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는 에세이스트로서의 박완서의 면모를 발견하도록 하는 작품이다. 한국문학의 거목으로서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중앙문화대상(1993), 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한무숙문학상(1995),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 인촌문학상(2000), 황순원문학상(2001) 등을 수상했다. 2006년 호암예술상,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타계 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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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95년 『문학동네』에 단편소설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첫사랑』 『호랑이를 봤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참말로 좋은 날』 『이 인간이 정말』 『ㅤㅁㅢㅤ리도 괴리도 업시』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인간의 힘』 『도망자 이치도』 『위풍당당』 『투명인간』 『왕은 안녕하시다』(전2권), 산문집 『소풍』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칼과 황홀』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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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5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고 원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에 <다시 시작하는 아침>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등장한 후, 창작집 『귀머거리새』와 『원미동 사람들』을 출간, “단편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1990년대 들어서 양귀자는 장편소설에 주력했다. 한때 출판계에 퍼져있던 ‘양귀자 3년 주기설’이 말해주듯 『희망』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천년의 사랑』 『모순』 등을 3년 간격으로 펴내며 동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상했다. 탁월한 문장력과 놀라울 만큼 정교한 소설적 구성으로 문학성을 담보해내는 양귀자의 소설적 재능은 단편과 장편을 포함, 가장 잘 읽히는 작가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소설집으로, 『귀머거리새』 『원미동 사람들』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 『슬픔도 힘이 된다』를, 장편소설 『희망』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천년의 사랑』 『모순』을, 산문집 『내 집 창밖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 『삶의 묘약』 『양귀자의 엄마노릇 마흔일곱 가지』 『부엌신』 등이 있으며 장편동화 『누리야 누리야』가 있다. 1987년 『원미동 사람들』로 유주현문학상을, 1992년 『숨은 꽃』으로 ‘이상문학상’을, 1996년 『곰 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1999년 <늪>으로 21세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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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1 경북 안동 출생 1965 『현대문학』 등단 시집 『달하』 (1970)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 (1993) 『봄비 한 주머니』 (2000) 『다보탑을 줍다』 (2004) 『둥근 세모꼴』 (2011) 『터무니』 (2021) 등 다수 펜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목월 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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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오영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7~1976. 양정고보를 졸업하고, 보성고보에서 2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1957년 『현대문학』에 수필 「측상락厠上樂」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양잠설」, 「부끄러움」, 「온돌의 정」, 「마고자」, 「백사장의 하루」, 「달밤」, 「방망이 깎던 노인」 등의 수필과 「연암의 문장」, 「노계 가사의 재평가」 등의 평문을 발표했다. 저서로 수필집 『고독의 반추』와 『방망이 깎던 노인』, 수필 창작론 『수필문학입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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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하 (지은이)    정보 더보기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났다. 수필가이면서 영문학자다. 어린 시절 성장 과정은 그의 수필 <어머님의 기억>에 잘 나타나 있다. 1923년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 1927년 일본 제삼고등학교(第三高等學校) 졸업, 1930년에는 도쿄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31년 도쿄제국대학 대학원을 수료 후 귀국해서 1934년에 연희전문학교 강사를 지냈다. 1941년부터 연희전문학교 문학과 교수로 지내면서 영문학 관계 논문과 수필을 발표했다. 1945년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취임한 뒤 해방이 되었다. 1946년 해방 후 경성제국대학이 국립 서울대학교가 되면서 문리과대학 교수로 취임했다. 1950년부터 1952년까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했다. 1953년부터 1957년까지 미국의 예일대학에서 언어학부의 마틴 교수와 함께 ≪한미사전(韓美辭典)≫을 편찬했다. 1954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 되었고 1957년 귀국 후 다음 해인 1958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장 서리가 되었다. 1963년 2월 4일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위암으로 타계했다. 그는 수필가로 유명하지만 주지주의 이론을 소개한 평론가, 시인이기도 하다. 평론 <리차즈의 문예가치론>(1933)을 비롯해 <‘말’ 문제에 대한 수상(隨想)>(1935), <조선 현대시 연구>(1935), <바라던 ‘지용 시집’>(1935) 등을 발표했고, 이후 <송전 풍경(松田風景)>(1939)·<내 차라리 한 마리의 부엉이가 되어>(1949)·<마음과 풍경>(1956)·<조지 호반에서>(1956)·<내가 어질다면>(1957)·<미국 병정>(1957)·<삼면경(三面鏡)>(1958)·<사람의 마음이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1958)·<조춘 삼제(早春三題)>(1958)·<십 년 연정(十年戀情)>(1958)·<미스터 모리슨(Mr.?Morison)>(1959) 등의 시를 발표했다. 소설로는 <백조의 노래>(1943)가 있다. 피천득(皮千得), 김진섭 등과 함께 찰스 램(Charles Lamb)·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등 정통 유럽풍의 수필을 도입, 본격 수필을 발표했다고 평가된다. 수필집 ≪이양하 수필집≫(1947)과 ≪나무≫(1964)는 한국 현대 수필 문학사의 주요 업적으로 꼽히며, ≪이양하 수필집≫에 수록된 <봄을 기다리는 마음>·<신록 예찬>·<내가 만일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프루스트의 산문(散文)>·<페이터의 산문(散文)> 등은 대표적 수필로 1960∼1970년대 독자들에게 널리 읽혔다. 일찌기 영문학자로서 아이버 리처즈(Ivor Armstrong Richards)의 ≪시와 과학≫(1947)을 번역해 리처즈의 문학 이론을 식민지 조선에 최초로 소개하는 한편, 권중휘(權重輝)와 함께 ≪포켓 영한사전≫(1954)을 펴내어 영미 문학 보급에 기여했다. 이 밖에 <루소와 낭만주의>(1940, 서평)·<제임스 조이스>(1941) 등의 영문학 관련 학술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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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한국 단편문학의 수작으로 손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 성(性)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새로운 작품경향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던 1920년대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였다.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경성 제1고보(현재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현재의 서울대학교) 법문학부 영문과 를 졸업하고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로 데뷔하였다. 「행진곡」, 「기우」 등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를 청산하고 구인희(九人會)에 참여, 「돈」, 「수탉」 등 향토색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4년 평양 숭실전문 교수가 된 후 「산 」, 「들 」 등 자 연과의 교감을 수필적인 필체로 유려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했고, 1936년에는 한국 단편문학의 전형적인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하였다. 그의 문체는 세련된 언어, 풍부한 어휘, 시적인 분위기로 요약할 수 있으며, 시적인 정서로 소설의 예술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2년 평양에서 결핵성 뇌막염으로 3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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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 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에서 1년간 번역학을 공부했으며, 서강대 영미어문 전공 교수이자 번역가, 칼럼니스트, 중고교 영어 교과서 집필자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생일》, 《축복》의 인기로 ‘문학 전도사’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아버지 장왕록 교수의 10주기를 기리며 기념집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엮어 내기도 했다. 번역서로는 《종이시계》, 《슬픈 카페의 노래》, 《이름 없는 너에게》 등 다수가 있고, 그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살아있는 갈대》는 부친과 공역했다. 김현승의 시를 번역하여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으며, 첫 우리말 수필집 《내 생애 단 한 번》으로 ‘올해의 문장상’을 수상했다. 암 투병을 하면서도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들을 독자에게 전하던 그는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남기고 2009년 5월 9일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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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숙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9년 3월 15일 함경남도 출생. 1838년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1939년 단편소설 '시골로 가는 노파'로 등단하였다. <전숙희 문학전집(전7권)> <당신은 특별한 사람> <사랑이 그녀를 쏘았다> <가족과 문우들 속에서> 등을 집필하였다. 1983년부터 1991년까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2004년에는 제3회 유관순상을 수상하였다. 2010년 8월 1일 향년 91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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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3년에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했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는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근대와 현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시기의 왜곡된 삶을 조명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청년 문학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했다. 소설집으로 『타인의 방』, 『술꾼』, 『개미의 탑』, 『견습환자』 등이 있으며, 『길 없는 길』, 『도시의 사냥꾼』, 『잃어버린 왕국』, 『상도』, 『내 마음의 풍차』, 『불새』, 『제4의 제국』,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등의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 수필집으로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천국에서 온 편지』, 『최인호의 인생』 등이 있다. 작고 이후 유고집 『눈물』, 1주기 추모집 『나의 딸의 딸』, 법정스님과의 대담집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문학적 자서전이자 최인호 문학의 풋풋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작품집 『나는 나를 기억한다 1, 2』, 세 번째 유고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네 번째의 유고집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와 5주기 추모작 『고래사냥』이 재간행되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불교출판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3년 ‘아름다운 예술인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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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0년 5월 29일 지금의 서울 종로에서 가죽신을 만들어 팔던 아버지 피원근(皮元根)과 어머니 김수성(金守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피천득이 태어나던 당시 부친 피원근은 한성(漢城)의 중심부, 즉 지금의 종각에서 종로 5가에 이르는 지역을 포함해 상당히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구한말의 거부(巨富)였는데, 피천득의 나이 여섯 살(1916) 때 사망하였다. 아홉 살 때 모친마저 세상을 뜬 이후 삼촌 집에서 성장했다. 모친을 여윈 1919년, 서울 제일고보 부속국민학교에 입학해 1923년 4학년을 수료하고, 같은 해 서울제일고보에 입학해 1926년 졸업했다. ‘거문고를 타고 노는 때 묻지 않은 아이’라는 뜻을 지닌 ‘금아(琴兒)’는 유년기부터 피천득의 집안과 교류가 있었던 춘원 이광수가 지어준 호이다. 춘원의 권유로 16세 때인 1926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공보국중학교(Thomas Hanbury Public School)에서 수학했는데, 이 무렵 평생의 정신적 스승이 된 도산 안창호를 만나게 된다. 1929년에는 상하이 후장대학(?江大學) 예과에 입학하고 이듬해인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을 처음으로 발표한 뒤 <소곡>(1931), <가신 님>(1932), 그리고 수필 <눈보라치는 밤의 추억>(1933), <나의 파일>(1934) 등을 차례로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전개한다. 1931년에는 후장대학 영문과에 진학해 1937년 졸업한 뒤 귀국해서 미국계 석유회사 스탠다드오일사에 잠시 근무했다가 경성중앙상업학원 교사로 부임한다. 1945년 경성제국대학 예과 교수를 거쳐 1946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영시를 강의했고, 1954년 미 국무부 초청으로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2007년 5월 25일 향년 9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선생은 1947년 ≪서정시집(抒情詩集)≫(상호출판사), 1959년 ≪금아시문선(琴兒詩文選)≫(경문사), 1969년 문집 ≪산호(珊瑚)와 진주(眞珠)≫(일조각), 1976년 수필집 ≪수필≫(범우사)을 출간했고 같은 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시집≫(정음문고)을 번역·간행했다. 1980년에는 그간 발표한 산문과 시를 선해서 ≪금아문선(琴兒文選)≫과 ≪금아시선(琴兒詩選)≫(일조각)을 출판했고, 1993년에는 시집 ≪생명≫과 ≪삶의 노래≫(동학사), 1996년에는 수필집 ≪인연≫(샘터), 1997년에는 <피천득 문학 전집>, 2001년에는 영문판 시 수필집 ≪A Skylark≫(샘터)을 간행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91), 인촌상 문학부문(1995), 자랑스런 서울대인상(1999)을 수상한 바 있다. 부인 임진호(林珍鎬) 여사 사이에서 2남(세영, 수영) 1녀(서영)를 두었으며, 장남 세영은 연극배우 및 성우, 라디오 DJ로 활동하다가 캐나다로 건너가 30여 년을 살다 부친의 권유로 귀국해 경북 문경에서 수목원을 운영하고 있고, 차남 수영은 의대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선생의 수필에 자주 등장하는 막내딸 서영은 도미(渡美)해 현재 보스턴대학의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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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섭 (지은이)    정보 더보기
청천(聽川) 김진섭(金晋燮)은 1903년 8월 목포에서 태어났다. 고향은 안동이었으나 관리였던 부친을 따라 제주와 나주 등지로 옮겨 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20년 양정고보를 졸업하고 1921년 일본 호세이(法政)대학 법과에 입학했다. 이듬해 같은 대학 예과로 전과했으며 1924년에 독문학과에 입학해 1927년에 졸업했다. 일본 유학 시절 손우성, 이하윤, 정인섭 등과 외국 문학 연구회를 결성하였고, ≪해외 문학≫ 발행에 참여했다. 귀국 후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에 근무하며 수필과 평론을 발표했으며, 극예술 연구회를 통해 신극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와 성균관대학에서 독문학을 강의했으며, 서울신문사 출판국장을 지냈다. 1950년 8월 자택에서 납북되었고 이후 생사는 알려진 바가 없다. 김진섭은 1920년대 중반부터 200여 편의 평론과 수필을 발표했으며, ≪인생 예찬≫(1948), ≪생활인의 철학≫(1949), ≪교양의 문학≫(1950) 등을 발행했다. 1958년 박종화의 주관으로 40여 편의 유고를 모아 ≪청천 김진섭 수필집≫(신아사)이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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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욱 (해설)    정보 더보기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철학자이자 수필가로 호는 이당(怡堂). 1920년 6월 26일 평남 용강 태생이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졸업하고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강의했으며, 《사상계》주간과 숭전대 교수를 지냈다. 국내에 읽을 만한 철학 교양서가 드물었던 시절, 수많은 저술과 대중 강연을 통해 동·서양 사상의 핵심을 설파, 방향 감각을 상실한 현대인과 현대 사회에 새로운 가치관을 세워 주고자 한 숱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우리 사회의 인간성 상실과 가치관 혼란을 지적했다. 1985년 인하대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9년부터 1985년까지 숭실대 철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도산아카데미연구원 고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으며, 숭실대 명예교수를 역임하였다. 평생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전하는 데도 힘썼던 그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토대로 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동양적 세계’ 관련한 내용의 많은 집필을 했다. ‘철학의 대중적 전파’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강원 양구군에 한국 철학인으로는 처음 ‘안병욱 철학의 집’이 세워졌다. 2013년 10월 10일 향년 94세로 양구에 묻혔다. [저서] 「회고와 전망」(1954), 「자유의 아포리아」(1958), 「기계의 논리와 윤리」(1960),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립」(1963), 「사랑과 신념과 사명」(1965), 「현대의 삼강오륜」(1968), 「창조와 혼돈의 장」(1968)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한편 서양의 사상을 소개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였는데, ‘현대사상 강좌’라는 제목으로 『사상계』에 연재한 「휴머니즘」, 「생의 철학」, 「프래그머티즘」, 「허무주의」, 「실존주의」, 「현대적 세계관」 등을 묶어서 낸 것이 첫 저서 『현대사상』(1957)이다.『사색의 향연』(1962), 『철학노우트』(1963), 『행복의 미학』(1966),『인생은 예술처럼』(1968), 『진리의 샘터에서』(1970) 외 숱한 저서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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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1년 충남 보령에서 출생하여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65년 김동리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단편 〈다갈라 불망비〉(1965)와 〈백결〉(1966)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말의 참맛을 알게 하는 어휘와 문장으로 자신이 경험한 농촌 현실과 농민 문제를 그려내어 농민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또한, 계간 《실천문학》을 창간하고,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집행 위원으로 활동하며,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했다. 200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되나 이듬해 발병으로 중도 하차하고 2003년 2월 25일 타계했다. 문학동네 촌장으로서의 문단 통합적 활동과 민주화 운동, 그리고 문학적 성가를 모두 인정해 문인협회, 작가회의, 펜클럽 등 문단 3단체가 문단 사상 초유로 합동 장례식을 올렸으며 정부에서도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소설집 《이 풍진 세상을》(1972) 《해벽》(1974) 《관촌수필》(1977) 《우리동네》(1981) 《유자소전》(1993), 장편소설 《장한몽》(1987) 《산 너머 남촌》(1990)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등이 있다. 한국창작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요산문학상, 흙의 문예상, 펜문학상, 서라벌문학상, 농민문화상, 만해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신동엽창작기금과 춘강문예창작기금 수혜자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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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4년 충남 서산 출생. 호는 우보.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14년 《매일신보》 입사, 사회부장을 지낸 뒤 1920년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동아일보》의 지원을 받으며 와세다 대학에 유학한 후 돌아와 《동아일보》의 사회면을 개혁했다. 1924년 5월 《조선일보》로 옮겨 제5대 편집국장을 맡았고, 1926년 12월 《중외일보》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30년 《중외일보》가 자진 휴간하자 퇴사했다. 1934년 경성 궁정동 자택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1918년《매일신보》에 연재된 <애사>를 시작으로 『무쇠탈>,『죽음의 길』등의 번안소설을 발표했다. 1920년 《폐허》 동인이 되어 '어린 소녀', '음악회'를 발표했으며 <오호 고균거사―김옥균 실기> 등의 저서가 있다. 1930년대에는 <천아성>,『새 생명』 등 역사소설을 발표했다. 이외 다수의 수필과 논설이 있다. 수필가로서 명성을 안겨준 '청춘예찬'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바 있으며, 현재는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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