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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베스트 7종 세트 - 전7권

[세트] 베스트 7종 세트 - 전7권

에밀 졸라, 장 자크 루소, 존 스튜어트 밀,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B. 스피노자, 루돌프 폰 예링, 제러미 벤담 (지은이), 서병훈, 윤철홍, 주경복, 이진우, 유기환, 조현진, 신건수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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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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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베스트 7종 세트 - 전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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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세트] 베스트 7종 세트 - 전7권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마르크스주의
· ISBN : K532434198
· 쪽수 : 1397쪽
· 출판일 : 2002-10-30

목차

[공산당선언]

들어가는 말

제1장 공산당선언

1.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2.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
3.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문헌
1) 반동적 사회주의
2) 보수적 또는 부르주아-사회주의
3) 비판적-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제2장 공산주의의 원칙

제3장 <공산당 선언>의 중판 및 번역본들의 서문

1. 1872년 독일어판 서문
2. 1882년 러시아어판 서문
3. 1883년 독일어판 서문
4. 1888년 영어판 서문
5. 1890년 독일어판 서문
6. 1892년 폴란드어판 서문
7. 1893년 이탈리어어판 서문 - 이탈리아의 독자에게

해제 - 철학자 마르크스, 공산주의에서 공생주의로

1. 자본주의의 보편화와 <공산당선언>의 의미
2.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
3. <공산당선언>의 철학적 기원
4. 공산주의 이념과 유토피아적 모더니즘
5. '운동'으로서의 공산주의와 시민 사회의 해부
6. <공산당선언>의 현대적 의미와 포스트모던의 공생주의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인간 불평등 기원론]

들어가는 말

제네바 공화국에 바치는 글
머리말

인간 사이의 불평등의 기원과 근거들에 대한 논문
제1부
제2부

해제 -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
1. 루소의 삶
2. 통념에 대한 도전, <학예론>과 <인간 불평등 기원론>
3. 인류의 역사에 대한 가설적 추론
4. 원초적 자연 상태의 인간
5. 인간 불평등의 원시적 기원들
6. 불행한 문명을 치유할 방법은?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자유론]

들어가는 말

제1장 머리말
제2장 생각과 토론의 자유
제3장 개별성 :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요소
제4장 사회가 개인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
제5장 현실 적용

해제 -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고민한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
1. <자유론> 애사
2. 아버지 제임스 밀의 영재 교육
3. 정치에 잠깐 발 담그다
4. 주요 저술들
5. <자유론> 읽기
(1) 다수의 횡포, 고사 위기의 개별성
(2) 사회성과 개별성
(3) 방향이 있는 자유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나는 고발한다]

들어가는 말

서문
쉐뤠르 케스트네르 씨
조합
조서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프랑스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고발한다! - 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르 씨에게 보내는 편지
배심원들을 향한 최후 진술
정의
제5막
알프레드 드레퓌스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
공화국 대통령 에밀 루베 씨에게 보내는 편지

해제 - 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의 양심
1. 에밀 졸라
(1) 졸라의 문화사적 좌표
(2) 자연주의자 졸라
(3) 시대의 증인 졸라
2. 드레퓌스 사건
(1) 드레퓌스 사건의 역사적 배경
(2) 드레퓌스 사건의 진행 과정
ㄱ. 드레퓌스 재판과 유죄 판결
ㄴ. 피카르의 문제 제기
ㄷ. 에스테라지 재판과 무죄 석방
ㄹ.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ㅁ. 드레퓌스 사건의 재심과 사면
ㅂ. 드레퓌스의 완전한 복권
3. 드레퓌스 사건과 졸라
(1) <나는 고발한다!> 이전
(2) <나는 고발한다!>
(3) <나는 고발한다!> 이후
4. 멈추지 않는 진실
(1) 드레퓌스 사건의 역사적 의미
(2) 졸라에게 보내는 경의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에티카]

들어가는 말

제1부 신에 대하여
부록

제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정리 49의 따름정리와 증명 및 주석 - 의지와 지성은 동일한 것이다

제3부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서문

제4부 인간의 예속 혹은 정서의 힘에 대하여
서문
부록

제5부 지성의 역량 혹은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서문

해제 - 자연 속에서 자유를 추구한 철학자
1. 데카르트를 넘어선 스피노자
(1) 실체의 문제
(2) 정신과 신체의 관계 문제
(3) 자유의 문제
2. <에티카>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
(1) 신은 인격적 존재가 아니다 - 목적론과 의인론적 신관에 대한 비판
(2) 우리는 아는 만큼 긍정하고 긍정하는 만큼 안다 - 데카르트의 의지론 비판
ㄱ. 데카르트의 오류에 대한 설명 비판
ㄴ. 관념, 사물의 상, 개념의 구분
ㄷ. 가능한 반론과 그것에 대한 논박
(3)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4) 만물은 자기 보존의 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동등하다
(5) 정념은 의지가 아니라 정신의 인식에 의해 치유될 수 있다
3. <에티카>는 서양 사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1) 17세기 - 무신론자 스피노자
ㄱ. <신학-정치론> 비판
ㄴ. 실체의 통일성과 결정론
ㄷ. 스피노자 서클
(2) 18세기 - 창조적인 오해의 시기
ㄱ. 범신론과 카발라주의
ㄴ. 전투적인 익명의 스피노자 추종자
ㄷ. 범신론 논쟁
(3) 19세기 - 다양한 이미지의 공존
ㄱ. 독일 낭만주의자와 관념론자 - 신에 취한 사람
ㄴ. 쇼펜하우어와 니체 - 고행자로서의 스피노자
ㄷ.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4. 스피노자 사상의 현대적 의의는 무엇인가

부록 - <에티카> 차례

용어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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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에 대하여

[권리를 위한 투쟁]

들어가는 말
머리말
제11판 서문

제1장 법과 권리의 생성과 목적
제2장 법과 권리를 위한 개인의 투쟁
제3장 국민의 법감정
제4장 독일 보통법에서 권리를 위한 투쟁

해제 - 법학계 프로메테우스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
1. 강렬한 자유정신의 소유자, 예링
2. 법과 권리의 존재 이유를 말한다
3. 예링이 후대에 미친 영향
4.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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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에 대하여

[파놉티콘]

들어가는 말

제러미 벤담이 프랑스 국민의회 의원 가랑에게 보내는 편지

파놉티콘―감시 시설, 특히 감옥에 대한 새로운 원리에 관한 논문
1. 파놉티콘의 건축
2. 파놉티콘의 본질적인 장점
3. 파놉티콘의 세부 사항

두 번째 부분―파놉티콘의 관리에 대하여
1. 계약에 의한 관리와 신뢰에 의한 관리의 비교
2. 성별 격리
3. 범죄 등급과 무리별 격리
4. 노동에 관하여
5. 식사 조절에 관하여
6. 의복에 관하여
7. 청결함과 건강에 관하여
8. 교육과 일요일 시간 활용에 관하여
9. 징벌에 관하여
10. 석방된 수감자들을 위한 준비에 관하여
11. 새롭고 간단한 건축 아이디어

해제―파놉티콘과 근대 유토피아
1. 벤담과 공리주의
2. 벤담과 파놉티콘
(1) 파놉티콘의 등장
(2) 18세기 말 감옥 문제
(3) 파놉티콘 구상
(4) 파놉티콘, 절반의 성공
(5) 파놉티콘 건설의 실패
3. 파놉티콘 건축
(1) 수정과 실현에 관하여
(2) 다양한 건축적 기원과 파놉티즘
(3) 파놉티콘의 후예
4. 파놉티콘 관리 방식과 노동
(1) 근대의 노동과 감옥
(2) 감옥의 노동과 분업
(3) 공동 노동과 수용실 체계
(4) 벤담의 관리 방식
(5) 파놉티콘에서의 노동
(6) 벤담식 유용성과 행봉
5. 파놉티콘과 푸코의 해석
(1) 실패한 파놉티콘의 의미
(2) 근대 권력과 파놉티콘
6. 파놉티즘과 새로운 권력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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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에 대하여

저자소개

에밀 졸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40년 4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인 어머니와 이탈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에밀 졸라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던 것 같다. 학교에서의 성적은 들쑥날쑥했고, 공부보다는 친구와 놀기를 좋아했으니 말이다. 훗날 인상주의 화가로서 크게 유명해지는 폴 세잔(Paul Cézanne)은 당시에 그와 가장 친했던 친구였다. 점점 심해지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에밀의 어머니는 파리로 이사하기로 결심한다. 1858년 파리로 상경한 에밀 졸라는 그의 지역 사투리 때문에 학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에밀 졸라는 그다음 해에 본 자연계 대학 입학시험에 실패했다. 같은 해인 1859년 11월, 그는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Marseille)로 가서 다시 입학시험에 응시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크게 낙심한 어머니는 그가 일자리를 찾도록 했다. 주변의 도움으로 세관의 말단직에 취직했으나 그가 받는 급여로는 집안의 생계를 제대로 꾸려갈 수가 없었다. 그는 좀 더 나은 직업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2년을 고생한 끝에 아셰트(Hachette) 출판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출판사의 일은 그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이 시기에 그는 많은 책을 접하면서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문학적 재능에 신뢰를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24세부터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865년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의 저서 《실험 의학 개론(Introduction à la Médecine expérimentale)》에 심취한다. 이때부터 에밀 졸라는 정신에 미치는 육체의 영향과 유전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그의 대표작 《루공ᐨ마카르 총서, 제2제정 시대 어느 집안의 자연적·사회적 역사(Rougon-Macquart, Histoire na- turelle et sociale d’une famille sous le Second Empire)》는 바로 이 문제를 증명하기 위해서 집필된 실험소설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자연주의의 대표적 주자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 작품집의 제7권인 《목로주점(L’Asso- mmoir)》과 제13권인 《제르미날(Germinal)》은 자연주의 소설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 에밀 졸라는 귀족적이기보다는 서민적이며, 그래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투쟁을 벌인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특히 ‘드레퓌스 사건(l’affaire Dreyfus)’과 관련하여, 1898년 1월 13일 〈로로르(L’Aurore)〉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의 논설 기고문을 발표해 프랑스 사회가 정의와 진실, 그리고 인권 옹호의 문제를 인식하도록 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생전에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드레퓌스 사건의 부당성에 대한 기고문을 발표한 직후, 그는 프랑스 육군 참모본부에 의해 명예훼손죄로 기소되어 징역 1년에 3000프랑의 벌금을 내라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항소했고, 그해 4월 2일 고등법원은 그에 대한 유죄판결을 기각했다. 프랑스 육군 역시 고등법원의 판결에 항소했다. 에밀 졸라는 새로운 재판이 열리기 전에 변호사와 친구들의 충고에 따라 영국으로 도망을 쳐야 했다. 1899년 6월 5일 드레퓌스 대위가 대통령 특사로 석방되면서 에밀 졸라도 영국에서 프랑스로 귀국했다. 그는 다시 활동을 재개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1902년 9월 29일 밤 뜻밖의 사고가 발생했다. 메당(Médan)의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고 파리의 아파트로 돌아온 에밀 졸라 부부는 몇 달째 비워두었던 집 안이 눅눅하다고 느꼈다. 그들은 난로를 피우고 식사를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한밤중에 마담 졸라는 몸에 이상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머리가 무겁고 속이 메스꺼웠다. 난로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에밀 졸라 역시 동일한 증세로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구조를 요청할 힘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아홉 시경 아무런 기척이 없던 방문을 하인들이 열고 들어왔다. 그들은 이미 죽어 있는 에밀 졸라와 실신한 그의 아내를 발견했다. 당시 62세였던 에밀 졸라는 이렇게 어이없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02년 10월 5일 일요일, 그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그로부터 6년 뒤인 1908년 6월 6일, 그의 유해는 프랑스의 위인들이 안치되어 있는 팡테옹 신전(le Panthéon)으로 옮겨졌다. 이제 그는 프랑스의 영원한 지성으로 기억되며 존경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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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 (지은이)    정보 더보기
스위스 제네바 공화국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사회계약론자이자 직접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 계몽주의 철학자이다.루소는 이성적 문명이 오히려 감성의 퇴보를 불러왔다고 주장하여 '계몽주의를 비판한 계몽주의자'로 불리며, 18세기 계몽의 시대에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도 그는 정치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서, 사회계약은 자유와 평등에 기반해야 하므로 국가의 규칙인 법은 '일반의지'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인민주권론을 주장하여 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였고, 이후 이 사상은 프랑스 대혁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침으로써 근현대 민주주의 형성에 거대한 기여를 하였다. 또한 고전주의 소설에서 벗어나 낭만주의 소설을 개척하여 당대에 어마어마한 유명세를 얻은 최초의 베스트셀러 소설 작가이기도 하고, 말년에는 자신의 숨기고 싶은 과거마저 솔직하게 보여주는 ��고백록��을 써서 근대 자서전의 전형을 구축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교육학적으로는 당시의 강압적인 직업 교육에 맞서, 개인의 독립성을 길러주는 자연주의적 교육을 주장하여 아동교육에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왔다. <저서> ��근대음악론��, 1736 ��학문예술론��, 1750 ��희극 나르시스��, 1752 ��마을의 점쟁이��, 1752 ��인간 불평등 기원론��, 1754 ��정치경제론��, 1755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연극에 관한 편지��, 1758 ��신 엘로이즈��, 1761 ��에밀��, 1762 ��사보이 사제의 신조��, 1762 ��사회계약론��, 1762 ��말제르브에게 보내는 편지��, 1762 ��피그말리온��, 1762 ��산에서 쓴 편지��, 1764 ��고백록��, 1782 ��코르시카 헌법 초안��, 1772 ��폴란드 정부론��, 1772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 1781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1782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 – 대화��, 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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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세기 영국, 특히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며 사회개혁가로서, 학문적으로는 철학과 경제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루었고, 사회개혁가로서는 노동자들의 지위 향상과 여성참정권 운동 등에 기여했다. 1806년 5월 20일, 현재 런던의 북부 교외에 있는 펜턴빌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인 제임스 밀과 해리엇 바로우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벤담의 동지이자 친구였던 그의 아버지의 교육을 따라 공리주의의 차세대 지도자가 되기 위한 엄격한 영재교육을 받았다. 3살에는 그리스어를, 8살에는 라틴어를 익혔으며, 10대 초에 이미 정치경제학, 논리학, 수학, 자연과학을 섭렵했고, 15살에는 철학, 심리학, 정치철학에 관한 주요 저술을 시작했으며, 벤담식 공리주의의 탁월한 토론가이자 선전가로 활약했다. 그렇지만 밀은 20세에 이르러 자신이 지금까지 추구하던 공리주의적 개혁에 대해서 어떤 정열과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이런 정신적 위기 속에서 밀은 워즈워드의 시를 통해 감성과 상상력에 눈을 뜨면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넓혀 낭만주의 문학과 철학 및 당시의 다양한 학문 사조를 흡수하게 되면서, 벤담식 공리주의와는 다른 밀 자신의 공리주의의 체계를 발전시키게 된다.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밀은 <논리학체계>, <정치경제학 원리>, <윌리엄 해밀턴의 철학>, <자유론>, <대의정부론>, <공리주의>, <여성의 예종> 등의 저술을 출판했고, 사후에 <종교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와 <사회주의론>이 출판되었다. 밀은 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사회현실에도 깊이 관여했는데, 17세인 1823년에 동인도회사에서 통신심사부장인 아버지 제임스 밀의 조수로 근무를 시작해서 그가 56세가 되는 1862년까지 근무했는데, 최종 직책은 현재로 치면 인도를 다스리는 중앙정부의 차관급이었다. 그 후 밀은 1865-68년에 자유당 후보로서 웨스터민스터의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어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하원의원직에서 물러난 후 아비뇽으로 옮겨 살다가 1873년 사망해서 아비뇽에 있던 자신의 아내 곁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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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마르크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18년 5월 5일 독일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김나지움을 마치고 1835년에 본 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다. 아버지의 압박으로 베를린 대학으로 전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이곳에서 헤겔 철학을 연구하며 청년헤겔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진보적 성향이 덜한 예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1842년 <라인신문>에서 일하기 시작해 편집장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사설을 통해 프로이센 정부와 언론의 검열을 매섭게 비난했다. 그 결과 신문은 이내 폐간됐다. 1843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정치경제학과 프랑스혁명의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경제학·철학 초고> <헤겔의 법철학 비판> 등의 원고를 썼다. 파리에서 프로이센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다가 프랑스에서 추방되어 벨기에 브뤼셀로 이주했다. 이 무렵 <철학의 빈곤> <자유무역에 대하여>의 원고를 썼다. 1847년 파리에 거주하는 독일 출신 노동자를 중심으로 생겨난 조직 ‘정의 동맹’의 요청을 받고 강령에 해당되는 글을 작성했다. 바로 <공산당 선언>이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파리로 잠시 피신했다가 쾰른으로 돌아갔다. <신라인신문>으로 이름을 바꾸고 신문을 재발행하기 시작했다. <임금노동과 자본>은 노동자를 일깨우기 위한 글로, 이 신문에 다섯 편으로 나뉘어 실렸다. 정부 탄압을 받던 <신라인신문>은 이내 기소당해 마르크스는 추방 명령을 받고 영국 런던으로 망명했다. 이곳에서 어려운 생계를 꾸리며 경제학을 연구했다. 1851년 유럽 특파원으로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사정을 분석하는 기사와 사설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이후 몇 년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정치경제학 비판> 등을 집필했다. 49세 되던 해에 《자본》이 출간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자치정부인 파리 코뮌이 수립됐으나, 정부군 진압과 학살로 무너졌다.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의 기록과 의의를 적은 《프랑스 내전》을 썼다. 국제노동자연맹을 이끌며 아나키스트파와 내분을 겪기도 하고, 독일사회주의 노동자당의 강령을 비판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이어 갔다. 1883년 3월, 엥겔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새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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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프로이센의 바르멘에서 부유한 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나지움 졸업을 1년 앞두고 중퇴한 후 아버지의 회계 사무소를 거쳐 3년 동안 브레멘의 수출회사에서 일한다. 이 시기에 자유주의나 혁명 관련 서적을 읽으며 헤겔의 변증법을 받아들였다. 1841년부터 1년간 베를린에서 군복무를 하는 동안 베를린 대학의 다양한 강의를 청강했으며, 소장 헤겔학파와 가깝게 지냈다. 1842년 아버지의 방적 공장이 있는 맨체스터로 가는 도중 쾰른에 들러 《라인 신문》에서 일하던 마르크스와 처음 만난다. 방적 공장에서 조수로 일하며 노동자 계급의 현실을 알게 되었고, 이는 후에 자본주의의 모순을 연구해 《1844년 영국 노동 계급의 상황》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1844년 마르크스가 편집하던 《독불 연보》에 〈국민경제학 비판 개요〉와 〈영국의 상태〉 등의 논문을 기고하여 자유주의 경제 이론의 모순을 폭로했고 혁명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다. 이후 마르크스와 《독일 이데올로기》, 《공산당선언》 등을 함께 작업하면서 평생 동안 변함없는 동지가 된다. 1848년 혁명의 와중에 마르크스가 설립한 《신라인 신문》에 글을 썼고, 1849년에는 독일의 바덴과 팔츠에서 혁명 전투에 직접 참여했다. 혁명이 실패한 후 그는 맨체스터로 돌아와 군사와 전쟁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쓰기도 했다. 1883년 마르크스가 사망하자,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남긴 저작들을 검토하고 새로 번역하는 등의 작업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마르크스가 미국 인류학자 모건의 《고대 사회》를 발췌해놓은 것을 보고, 마르크스의 비판적 주석을 참조하며 모건의 연구 결과를 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그 결과물이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이다. 《자본론》 2, 3권 역시 엥겔스가 고인의 노트를 정리하여 출간한 것이다. 1895년, 런던에서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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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지은이)    정보 더보기
종교의 자유를 찾아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로 이주해 온 유대인 상인 출신의 아버지 미카엘(Micahel)과 어머니 한나(Hannah Deborah) 사이에서 태어났다. 1656년 7월, ‘나쁜 견해와 행실’ 그리고 유대인 공동체가 제시한 사태 해결의 ‘방법과 약속’을 거절하여 파문을 당했으며, 이 무렵에 예수회 신부였던 학자 프란시스퀴스 판덴엔덴(Franciscus van den Enden)이 운영하는 라틴어 학교에 다닌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스피노자는 판덴엔덴에게서 라틴어뿐만 아니라 철학과 신학, 정치학도 배웠을 것이다. 1670년에는 네덜란드가 암울한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 직면하자 『신학정치론』을 집필하여 철학의 자유가 경건 및 국가의 안전과 양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유가 억압되면 경건과 국가의 안전 역시 위협받는다고 주장했다. 평생 렌즈를 깎으며 생계를 이어간 그는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n Huygens), 헨리 올덴부르크(Henry Oldenburg) 등 유럽의 학자들과 꾸준히 교류했다. 대표작은 형이상학과 인식론, 정념론과 윤리학을 총망라하여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이며, 젊은 시절의 미완성작인 『지성교정론』은 『윤리학』의 입문 성격을 띤다. 『윤리학』은 스피노자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으며, 『지성교정론』이나 미완의 최후 저작인 『정치론』 등 다른 원고와 함께 사후에 그의 지인들이 편집한 유고집으로 1677년에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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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폰 예링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18년 독일의 서북단 동프리슬란트의 유복한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하이델베르크, 괴팅겐, 뮌헨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자유와 독립, 법을 중시하는 가정교육과 보수적이고 학문 지향적인 대학 교육이 그의 세계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학창 시절에는 법학뿐 아니라 피아노 연주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극작가 헤벨과 교류하며 극작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특히 셰익스피어는 이후 예링의 저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42년 베를린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듬해부터 사강사로서 교직에 들어섰다. 1845년 바젤 대학의 교수로 임용된 이래 로스톡, 킬, 기센, 빈 대학에 재직하는 동안 많은 저작을 썼다. 특히 기센 대학에 재직하던 1852년에는 로마법의 현대적 의의와 연구 목적을 밝힌 대저작 《로마법의 정신》 제1권을 발표한 이후 13년간 전4권을 출간해 법학계에 명성을 알렸다. 동료 법학자 게르버와 함께 학술지 《현대 로마법과 독일사법의 해석론을 위한 연보》를 창간하기도 했다. 빈 대학에서 그의 강의는 특히 인기가 높았는데, 수강생 중 하나였던 러시아 황태자 레오 갈리친은 예링을 일컬어 ‘인류에게 법학의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라고 극찬했으며, 오스트리아 황제는 법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작위를 내리기도 했다. 예링은 4년 남짓 재직한 빈 대학을 떠나면서 1872년 빈 법조협회에서 고별 강연회를 열었다. 이 강연의 원고가 훗날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 출간되고 수십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 수단은 투쟁임을 선언한 이 책은 법과 권리에 대한 그의 사상을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1872년 다시 독일의 괴팅겐 대학에 초빙되어 정년퇴직할 때까지 재직하며 또 다른 명저 《법에서의 목적》을 출간했다. 이 책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법을 자세하게 전개함으로써 목적법학을 창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를 통해 당시 독일 법학에 지배적이던 형이상학적 추상성과 개념의 유희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한 그는 20세기 세계법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남기고 1892년 9월 17일 괴팅겐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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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벤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이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다. 15세에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21세에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지만, 변호사는 무의미하고 돈이 많이 드는 소송만 부추기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법률과 정치제도 개혁에 대한 연구와 정책에 반영하는 실천을 자신의 업으로 삼고 추진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 제임스 밀과는 공리주의 사상과 사회개혁에 힘을 합친 사상적 동지 관계로 특별한 사제의 인연이 있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저서로 『도덕과 입법의 원칙 서론』, 『법률론 일반』, 『사법과 도덕의 원리에 대한 서설』, 『의회 개혁론』, 『판례의 합리적 근거』, 『파놉티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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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훈 (옮긴이)    정보 더보기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라이스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2020년까지 숭실대학교에서 서양 정치사상, 자유주의, 문명론, 문학과 정치 등을 가르쳤다. 그동안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철학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썼다. 밀의 사회주의 사상을 음미한 《자유의 본질과 유토피아》(1995), 밀과 플라톤의 자유론을 비교 분석한 《자유의 미학》(2000), 밀과 알렉시 드 토크빌의 삶과 정치철학을 다룬 2부작 《위대한 정치》(2017)와 《민주주의》(2020)가 대표 저작이다. 2005년 존 스튜어트 밀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자유론》을 우리말로 옮긴 뒤 《공리주의》 《여성의 종속》 《대의정부론》 《종교에 대하여》 《사회주의론》을 차례로 번역 출간했다. 현재 숭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진실, 정치의 본질, 존재에 관한 일련의 저작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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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홍 (옮긴이)    정보 더보기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5년 당시 후기 대학인 숭실대학교에 입학했다. 집안 식구 중 많은 분들이 교직에 있는 관계로 교직이 싫어서 법대에 진학했다. 1학년 때는 전기 대학 실패의 충격을 잊고자 문학에 심취했는데 이때 밤을 새워 가며 읽은 시와 소설, 사회과학 서적은 평생의 윤기 있는 삶에 큰 자양분이 되었다. 당시 숭실대학교 법학과에는 젊고 유능한 네 분의 교수님이 계셨는데, 학문과 인생에 모두 귀감이 되는 훌륭한 분들이어서 대한민국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숭실대학교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만족스러운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저학년 때는 한동안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고시 준비를 생각해보기도 했으나, 3학년 때부터는 학문에 뜻을 두고 독일어 공부에 매진하면서 독일 유학을 준비했다. 이때부터 읽은 기초 법학(법철학, 법사학, 법사회학) 책들은 법학의 또 다른 묘미를 알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전공을 법사학으로 정하려 했으나, 법사학만으로는 대학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고 판단해 기본법인 민법을 공부하면서 부전공으로 법사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군대 복무와 대학원을 마치고 1983년에 꿈에 그리던 독일 유학을 떠났다.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독일어 ‘Frei(자유)’의 참 의미를 만끽하면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독일 법제사와 민법을 전공하면서 주로 토지소유권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1989년부터 광운대학교 법학과에 전임교수로 근무하던 중 1993년에 숭실대학교로 옮겨 재직하다 2020년에 정년퇴직했다. 그동안 사단법인 한국민사법학회 회장과 한국토지법학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토지소유권을 핵심 연구과제로 삼아 《소유권의 역사》, 《토지소유권에 대한 새로운 이해》, 《민사특별법 연구》 등을 저술하고 학생들을 위한 강의 교재로 《채권각론》, 《채권총론》, 《물권법》을 썼으며, 막스 카저의 《로마법제사》,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 헤데만의 《일반조항으로 도피》 등을 번역해 20여 권의 저서와 역서를 출간했다. 현재는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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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복 (옮긴이)    정보 더보기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언어소통 문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건국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커뮤니케이션학과를 신설하여 인간의 소통 문제에 관해 강의하고 연구했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과 메릴랜드 대학에서 방문교수를 지냈다. 홈페이지 http://joup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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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옮긴이)    정보 더보기
연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거쳐 동 대학 총장, 한국니체학회 회장, 한국철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포스텍 명예교수다. 지은 책으로 《AI 시대의 소크라테스》, 《니체의 인생 강의》,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 《의심의 철학》, 《불공정사회》,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권력에의 의지》, 《인간의 조건》, 《공산당선언》 등이 있다. 수십 년 동안 니체에 천착해온 철학자 이진우는 오늘도 니체의 말 하나를 갖고 산책에 나선다. 조금만 읽어도 소름이 돋는 니체의 명언이 자신의 삶에 큰 도움이 됐기에, 니체가 들려준 ‘망치의 말’이 독자들의 삶을 단단하게 만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니체의 사악한 말’ 50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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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환 (옮긴이)    정보 더보기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했고, 프랑스 파리 제8대학교에서 ‘노동소설의 미학’ 연구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했고,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알베르 카뮈』, 『조르주 바타이유』, 『노동소설, 혁명의 요람인가 예술의 무덤인가』, 『에밀 졸라』, 『프랑스 지식인들과 한국전쟁』(공저) 등을 썼고, 카뮈의 『이방인』, 『반항인』, 『페스트』, 바르트의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바타유의 『에로스의 눈물』, 바타유 소설 선집 『마담 에드와르다 / 나의 어머니 / 시체』, 외젠 다비의 『북 호텔』, 그레마스/퐁타뉴의 『정념의 기호학』(공역),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실험소설 외』, 『목로주점』, 『돈』, 『패주』, 졸라 단편소설 선집 『방앗간 공격』 등을 번역했다. 시집으로 『당신이 꽃 옆에 서기 전에는』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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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진 (옮긴이)    정보 더보기
10장_「알튀세르와 정신분석학: 주체 구성의 문제」 옮김 스피노자의 철학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숭실대학교와 서강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스피노자에 대한 베일의 비판은 정당한가?」(2008), 「속성의 공유불가능성 정리에 대한 라이프니쯔의 비판은 타당한가?」(2010) 등의 논문을 썼고,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의 『20세기 서양 철학의 흐름』(공역, 이제이북스, 2006), 바뤼흐 스피노자의 『에티카』(책세상, 2006)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스피노자 철학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의의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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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건수 (옮긴이)    정보 더보기
현재 경남대 건축학부 교수이다. 프랑스에서 건축가 학위(ADE)를 취득한 후 프랑스 정부장학금으로 연구하여 파리-에스트 대학(Univ. de Paris-Est)에서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과 미셸 푸코의 파놉티즘』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근대 건축의 생성 조건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최근 “건축의 주인은 누구인가?” 라는 주제로 전시(2020 대한민국건축문화제 주제 전시)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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