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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포 문학 걸작선: 고전편

세계 공포 문학 걸작선: 고전편

오노레 드 발자크, 에드거 앨런 포우, 에밀 졸라, 프란츠 카프카, 허버트 조지 웰즈, 헨리 제임스, 기 드 모파상,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앰브로스 비어스 (지은이), 이수현 (옮긴이)
황금가지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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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포 문학 걸작선: 고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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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세계 공포 문학 걸작선: 고전편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호러.공포소설 > 외국 호러.공포소설
· ISBN : 9788982735530
· 쪽수 : 465쪽
· 출판일 : 2003-08-05

책 소개

모파상, 카프카, 에밀 졸라, 에드거 앨런 포, 로버트 스티븐슨 등 세계 문학의 거장들이 다양하게 변주한 공포문학의 정수 열아홉 편을 모아 엮은 책. 생매장, 원한, 생령, 시체 훼손, 괴생물체, 고문, 형벌, 흡혈귀 등 극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가장 나약하고 추악한 본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목차

지옥으로의 여행|제임스 호그
마테오 팔코네|프로스페르 메리메
발드마르 씨 사례|에드거 앨런 포
그랑드 브러테슈|오노레 드 발자크
어느 낡은 옷에 대한 이야기|헨리 제임스
누가 알겠는가?|기 드 모파상
시체 도둑|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올리베이 베카유의 죽음|에밀 졸라
막아 놓은 창문|앰브로즈 비어스
빼앗긴 심장|몬테규 로즈 제임스
바다의 침입자|허버트 조지 웰스
표류선|윌리엄 호프 호지슨
선리 대저택|퍼시벌 랜던
유형지에서|프란츠 카프카
밀랍 인형|알프레드 매켈란드 버레이지
앰워스 부인|에드워드 프레드릭 벤슨
다섯 손가락을 지닌 짐승|윌리엄 프라이어 하비
문에 웅크리고서|도로시 캐슬린 브로스터
라이닝겐 대 거미 떼|칼 스티븐슨

옮긴이의 말 - 공포와 광기의 또 다른 세계
수록 작품 및 작가 원어명

저자소개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799년 5월 20일 프랑스 투르(Tours)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발자크의 모친은 자녀에게 무심한 편이어서 낳자마자 아들을 유모의 집에서 기르게 했고, 이어서 그를 오라토리오회 수도원 기숙학교에 넣고서 찾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유년기를 보낸 이 시절의 외로움과 슬픔은 그의 소설 《골짜기의 백합(Le Lys dans la Vallee)》에 잘 나타나 있다. 1814년 가족이 파리로 거처를 옮기게 되자 발자크는 파리에서 학업을 이어 가게 된다. 그는 법학 공부를 하는 이외에 소송 대리인과 공증인 사무소의 수습 서기로 일하면서 법률 실무를 익힌다. 이 시기에 얻은 법률 지식과 경험은 이후 그의 소설 창작의 밑거름이 되어 《인간 희극》에서는 법률문제와 관련한 많은 사건이 등장하며 풍부한 법률 지식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1819년 발자크는 법률가의 길을 포기하고 파리의 비좁은 다락방에 갇혀 지내며 문학 습작하는 생활에 전념한다. 첫 작품은 운문 비극 〈크롬웰〉이었고, 이후 몇몇 소설들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친구들과 공동 작업으로 당시 유행하던 모험 소설들을 출간하기도 했다. 1825년 문학 활동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발자크는 사업에 뛰어들어 재정적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출판사와 인쇄 및 활자 제조소 운영으로 이어지는 발자크의 사업은 2년 만에 실패로 끝났고 발자크는 파산에 이르러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다. 이후 문학의 길로 되돌아 왔으나 그는 평생 빚에 쫓기면서 돈을 벌기 위해 소설을 써야 하는 고달픈 생활을 계속하게 된다. 이후 《인간 희극》에 포함된 《마지막 올빼미당원(Le Dernier Chouan)》이 1829년 발표되면서 발자크의 작품은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한다. 이해에 나온 《결혼 생리학(La Physiologie du mariage)》은 세간의 큰 주목을 받으며 호응을 얻었다. 1830년부터는 파리의 여러 살롱을 다니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추구했다. 1833년부터 1835년에 이르는 동안 발자크는 소설가로서 당시 낭만주의 문학을 벗어나 자신의 확고한 창작 세계를 형성한다. 이 시기에 《고리오 영감(Le Pere Goriot)》을 비롯해 《외제니 그랑데(Eugenie Grandet)》, 《루이 랑베르(Louis Lambert)》, 《세라피타(Seraphita)》 등 많은 소설이 발표되었다. 발자크는 앞선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을 재등장시키는 독특한 기법을 《고리오 영감》에서 처음 시도한 이후 이 기법을 계속 사용하면서 자신이 이미 쓴 작품들과 앞으로 쓸 작품들을 연계해 하나의 거대한 체계로 완성할 계획을 했다. 1841년 이 총서의 제목을 《인간 희극》으로 정하고 첫 권에 서문(Avant-Propos)을 붙여 소설에 대한 자신의 개념과 작품들이 이어지는 원칙을 밝힌다. 그러나 애초에 130여 편의 소설들로 구상했던 작품집은 1850년 발자크가 서거하면서 미완성으로 남겨진다. 한편 발자크의 건강은 과도한 집필 활동과 재정적 압박으로 인해 차츰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1850년 1월 결혼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에 머물고 있던 발자크의 건강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그해 3월 결혼식을 올리고 5월 우크라이나를 떠나 파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신혼집에 도착한 뒤 발자크는 더 이상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3개월 만에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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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09년 보스턴에서 태어났으며, 두 살 무렵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세상을 떠나자 버지니아의 부유한 상인 존 앨런에게 입양되었다.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해 고대어와 현대어를 공부했지만 도박에 빠져 빚을 지면서 양부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가명으로 시집 《테멀레인 외 다른 시들》(1827)을 출간했으나 주목받지 못했고, 두 번째 시집 《알 아라프, 테멀레인 외 다른 시들》 역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계속되는 양부와의 불화로 파양당하고, 학교에서도 일부러 퇴학당했다. 그 후 단편 집필을 시작, 1832년 필라델피아 신문에 처음으로 다섯 편의 단편이 실리고, 이듬해 단편 〈병 속의 수기〉가 볼티모어 주간지 소설 공모전에 입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양부 존 앨런이 유산을 전혀 남기지 않고 사망하자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잡지사 편집자로 취직했고, 이 무렵 사촌여동생인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했다. 음주 문제로 잡지사를 그만두고, 장편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1838)와 단편집 《기괴하고 기이한 이야기들》(1839)을 발표했다. 새로운 잡지사에서 일자리를 구했으나 곧 해고당하고 아내 버지니아도 폐결핵에 걸리자 절망으로 폭음에 빠져들었다. 이 시기에 〈모르그 가의 살인〉, 〈검은 고양이〉, 〈황금 벌레〉 등 다수의 유명 단편들을 집중적으로 발표했고, 1845년 시 〈까마귀〉로 화제가 되면서 같은 해 시 창작에 관한 에세이 〈작법의 철학〉을 발표했다. 소설과 시뿐 아니라 비평 활동도 활발히 했으며, 신랄한 비판으로 문단과 마찰이 심했다. 1847년 버지니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정신적으로 더욱 피폐해졌다. 1849년 10월 볼티모어 거리에서 인사불성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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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40년 4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인 어머니와 이탈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에밀 졸라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던 것 같다. 학교에서의 성적은 들쑥날쑥했고, 공부보다는 친구와 놀기를 좋아했으니 말이다. 훗날 인상주의 화가로서 크게 유명해지는 폴 세잔(Paul Cézanne)은 당시에 그와 가장 친했던 친구였다. 점점 심해지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에밀의 어머니는 파리로 이사하기로 결심한다. 1858년 파리로 상경한 에밀 졸라는 그의 지역 사투리 때문에 학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에밀 졸라는 그다음 해에 본 자연계 대학 입학시험에 실패했다. 같은 해인 1859년 11월, 그는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Marseille)로 가서 다시 입학시험에 응시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크게 낙심한 어머니는 그가 일자리를 찾도록 했다. 주변의 도움으로 세관의 말단직에 취직했으나 그가 받는 급여로는 집안의 생계를 제대로 꾸려갈 수가 없었다. 그는 좀 더 나은 직업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2년을 고생한 끝에 아셰트(Hachette) 출판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출판사의 일은 그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이 시기에 그는 많은 책을 접하면서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문학적 재능에 신뢰를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24세부터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865년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의 저서 《실험 의학 개론(Introduction à la Médecine expérimentale)》에 심취한다. 이때부터 에밀 졸라는 정신에 미치는 육체의 영향과 유전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그의 대표작 《루공ᐨ마카르 총서, 제2제정 시대 어느 집안의 자연적·사회적 역사(Rougon-Macquart, Histoire na- turelle et sociale d’une famille sous le Second Empire)》는 바로 이 문제를 증명하기 위해서 집필된 실험소설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자연주의의 대표적 주자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 작품집의 제7권인 《목로주점(L’Asso- mmoir)》과 제13권인 《제르미날(Germinal)》은 자연주의 소설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 에밀 졸라는 귀족적이기보다는 서민적이며, 그래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투쟁을 벌인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특히 ‘드레퓌스 사건(l’affaire Dreyfus)’과 관련하여, 1898년 1월 13일 〈로로르(L’Aurore)〉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의 논설 기고문을 발표해 프랑스 사회가 정의와 진실, 그리고 인권 옹호의 문제를 인식하도록 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생전에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드레퓌스 사건의 부당성에 대한 기고문을 발표한 직후, 그는 프랑스 육군 참모본부에 의해 명예훼손죄로 기소되어 징역 1년에 3000프랑의 벌금을 내라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항소했고, 그해 4월 2일 고등법원은 그에 대한 유죄판결을 기각했다. 프랑스 육군 역시 고등법원의 판결에 항소했다. 에밀 졸라는 새로운 재판이 열리기 전에 변호사와 친구들의 충고에 따라 영국으로 도망을 쳐야 했다. 1899년 6월 5일 드레퓌스 대위가 대통령 특사로 석방되면서 에밀 졸라도 영국에서 프랑스로 귀국했다. 그는 다시 활동을 재개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1902년 9월 29일 밤 뜻밖의 사고가 발생했다. 메당(Médan)의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고 파리의 아파트로 돌아온 에밀 졸라 부부는 몇 달째 비워두었던 집 안이 눅눅하다고 느꼈다. 그들은 난로를 피우고 식사를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한밤중에 마담 졸라는 몸에 이상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머리가 무겁고 속이 메스꺼웠다. 난로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에밀 졸라 역시 동일한 증세로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구조를 요청할 힘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아홉 시경 아무런 기척이 없던 방문을 하인들이 열고 들어왔다. 그들은 이미 죽어 있는 에밀 졸라와 실신한 그의 아내를 발견했다. 당시 62세였던 에밀 졸라는 이렇게 어이없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02년 10월 5일 일요일, 그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그로부터 6년 뒤인 1908년 6월 6일, 그의 유해는 프랑스의 위인들이 안치되어 있는 팡테옹 신전(le Panthéon)으로 옮겨졌다. 이제 그는 프랑스의 영원한 지성으로 기억되며 존경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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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3년 7월 3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한 보헤미아 왕국(지금의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독일계 인문 중고등학교인 김나지움에서 교육받았다. 1901년 프라하의 독일계 대학인 카를 페르디난트대학교에 입학해 화학을 공부하다 법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한때 독문학에 관심을 두고 독문학을 전공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 무렵 평생의 벗 막스 브로트를 만나 교우하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더욱 키워갔지만 결국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법학 공부를 이어가 1906년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년간 법원에서 법률 시보로 실습하고 보험회사에 입사했다. 대학 시절부터 문학 창작에 뜻을 두고 단편소설과 산문을 집필해왔으나 고된 회사 업무로 글을 쓸 여력이 없을 정도가 되자 1908년 ‘보헤미아왕국 노동자재해보험공사’로 직장을 옮기고, 14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쓰기에 열중했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은 후에도 계속 작품을 집필했으며 1922년 병의 증세가 악화해 직장에서 퇴직한 후 1924년 6월 3일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요양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카프카는 숨을 거두기 전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유고를 모두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브로트는 카프카의 많은 작품과 일기, 편지 등을 편집, 출판해 카프카의 삶과 문학 세계를 세상에 널리 알렸다. 주요 작품으로 〈변신〉 〈시골 의사〉 〈단식 광대〉 등 중단편과 장편 《실종자》 《소송》 《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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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조지 웰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66년 영국 켄트주 브롬리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열네 살부터 약국, 포목점의 점원으로 전전했다. 열일곱 살에 미드허스트 그래머스쿨에서 수업을 받고 교생으로 채용되면서 자연과학과 경제학 서적을 폭넓게 읽었다. 다음 해 런던 과학사범학교에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입학했으나 지질학 최종 시험에 낙제해 장학생 자격을 잃고 사범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교사로 취업했으나 교내 축구 시합에서 큰 부상을 당해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치료와 글쓰기에만 전념했다. 런던대학교에서 이학사 시험을 치러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고 생물학 교사로 채용되었으나 병이 재발해 이후에는 글쓰기에만 전념했다. 1895년 과학 소설 《타임머신》을 출간하고 이듬해 과학 소설 《모로 박사의 섬》과 가정 소설 《우연의 바퀴》를 발표했다. 자연과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분야에도 관심을 두어 1901년에는 과학 소설 《달세계 최초의 인류》와 더불어 사회과학서 《예견》을 출간했으며 이듬해 사회주의 조직인 페이비언협회에 가입해 조지 버나드 쇼, 시드니 웨브 등과 교우하기도 했다. 1946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소설과 에세이, 사회과학서와 역사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 《투명 인간》, 《우주 전쟁》, 《공중 전쟁》 등이 있으며 논픽션으로 《사회주의와 가족》, 《세계사 대계》, 《간략한 세계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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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43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1862년 하버드 대학교 법과 대학에 입학하지만, 학업보다 문학에 뜻을 두고 1864년 첫 단편 소설인 「실수의 비극」을 발표한다. 그 후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을 여행하며, 1871년 첫 소설 『파수꾼』을 출간한다. 1875년 파리로 이주한 그는 투르게네프, 플로베르, 졸라, 도데 등 당대 작가들과 교류하며, 유럽 문화와 예술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제임스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다. 1877년 『아메리칸』에 이어 『유럽인들』(1878), 『데이지 밀러』(1879 ), 『여인의 초상』(1881), 『나사의 회전』(1898) 등을 연이어 출간하며 미국과 유럽, 양측 문단에서 호평을 얻는다. 이후 집필에 몰두하며 한평생 독신으로 지낸 제임스는 총 스물두 편의 장편 소설과 113편의 단편 소설 그리고 수많은 비평, 여행기, 희곡, 자서전 등을 남긴다. 그는 1911년 하버드 대학교, 1912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고, 1915년 영국으로 귀화한 뒤 이듬해 영국 국왕 조지 5세로부터 명예 훈장을 받는다. 같은 해 2월 28일, 제임스는 일흔세 살의 나이로 런던에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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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50년 프랑스 항구도시 디에프 근처 미로메닐 성城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별거 이후 에트르타에 있는 어머니의 별장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때 경험한 노르망디의 대자연, 시골 사람들의 성정과 습성 등은 그의 작품의 배경과 소재로 자주 나타난다. 고등학교 시절, 작가로서의 삶에 사표가 된 두 명의 스승, 시인 루이 부예와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만난다. 1869년부터 파리 법과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지만, 이듬해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군대에 징집되어 학업을 중단한다. 1871년 7월에 제대하여 1872년 3월 아버지의 소개로 해군성에 취직한다. 1880년 모파상은 에밀 졸라 등과 함께 소설집 『메당의 저녁Les Soirees de Medan』을 출판하고, 여기 수록된 「비곗덩어리」가 프랑스 문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890년까지 10년 동안 300여 편에 이르는 중·단편과 6편의 장편, 5편의 희곡 등을 창작하며 플로베르, 졸라와 더불어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10년은 육체와 정신의 병이 심각하게 나빠진 시기로, 그는 척추 통증과 시력 저하, 불면증 등 갖가지 질병에 시달렸다. 몇 번의 자살 기도 이후 1892년 파리 교외의 정신병원에 보내진 뒤 그곳에서 거의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1893년 7월 6일 생을 마감했다. 사진출처 -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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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50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등대를 전문적으로 짓는 건축 기사 아버지와 신사 계급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약해 어려서부터 정규 교육 과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개인 교사에게 배우고 여러 학교를 옮겨 다녔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등대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에든버러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문필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생계를 위해 법학을 전공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실제로 법률가 일을 하지는 않았다. 에세이와 시, 단편 소설 등을 쓰면서 유럽을 여행하다가 1876년 프랑스에서 미국인이자 기혼이었던 패니 오즈번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1879년 오즈번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여행길에 올랐다가 건강이 악화되었다. 1880년 5월 오즈번과 결혼하고 그녀가 전남편과 낳은 아들 로이드와 함께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다. 1881년 여름, 악천후로 실내에만 머물러 있어야 할 때 로이드와 함께 보물이 묻힌 섬에 대한 지도를 만들면서 놀다가 『보물섬』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이 이야기를 《영 포크스(Young Folks)》에 연재하고 1883년 책으로 출간해 곧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건강을 위해 영국 남부 해안 도시인 본머스에 정착해 그곳에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건』(1886) 같은 대표작들을 집필, 출간했다. 의사의 조언에 따라 미국으로 떠났다가 이후 길버트제도, 타이티, 뉴질랜드 등을 여행하다가 남태평양 사모아에 정착했다. 사모아 문화에 매료되어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으며, 관련 주제의 글들을 언론에 발표하는 한편 『캐트리오나』, 『섬에서 보내는 밤의 도락』, 『조수(潮水)』 같은 장편 소설들을 집필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1894년 과로로 사망했으며, 사모아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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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브로스 비어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42년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났다. 미국 남북 전쟁에 참전한 뒤 샌프란시스코, 런던, 워싱턴에서 기자와 비평가로 활동했다. 미국 생활에 싫증을 느낀 그는 1913년에 당시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던 멕시코로 갔다가 1914년 1월 11일 멕시코에서 실종되었으며, 정확한 사망 경위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불안, 죽음의 공포 등 영혼의 극한적인 상태를 에드거 앨런 포의 전통에 따라 표현해 한때 포와 비견되기도 했으나, 주로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소설을 주로 쓴 탓에 인기에 비해 문학성은 인정받지 못하다가 사후 50년부터 본격적으로 재조명되었다. 특히 1906년에 재출간된 단어 풍자 사전, <악마의 사전(The Devil’s Dictionar)>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저서로는 93편에 달하는 단편들과 <삶의 한가운데(In the Midst of Life)>와 <유령의 계곡(The Haunted Valley)>, <텅 빈 해골에서 나온 거미줄(Cobwebs from an Empty Skull)>, <어떻게 그런 일이?(Can Such Things Be?)> 등의 소설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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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옮긴이)    정보 더보기
국내 최고의 판타지 소설 번역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소설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며 《왕좌의 게임》, 《다이버전트》, 《수확자》, 《샌드맨》, 《문 너머의 세계들》, 《퍼시 잭슨과 올림포스의 신》 시리즈 등 다수의 판타지 대작, SF, 그래픽노블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은 책으로는 《외계 신장》, 《서울에 수호신이 있었을 때》, 《사막의 바다》가 있으며, 《패러노말 마스터》로 제4회 한국판타지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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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단언컨데 그건 꿈이 아니었습니다. 제 슬픈 경험으로 알아요. 전 마차와 말을 잃었습니다. 이제 뭐가 더 있죠? 제 손으로 그 계약서에 서명을 했고, 제가 직접 가장 준열하고도 끔찍한 계약에 뛰어들고 말았는데."
"하지만 그걸 지킬 필요는 없어요. 절대로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악마와 접촉하는 것은 죄악이지만,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은 훨씬 더 큰 죄악이오. R씨와 그 아들은 자기들이 있는 곳에 머물게 놔두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려고 하지 마시오." - '지옥으로의 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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