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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특별판 - 전10권 
· 분류 : 국내도서 > 고전 > 서양고전문학 > 서양현대고전
· ISBN : 9788937482205
· 쪽수 : 300쪽
· 출판일 : 2009-01-19
· 분류 : 국내도서 > 고전 > 서양고전문학 > 서양현대고전
· ISBN : 9788937482205
· 쪽수 : 300쪽
· 출판일 : 2009-01-19
책 소개
'민음 세계문학전집' 발간 11주년, 200권 돌파를 기념하여 기획된 특별판 세트. <거미여인의 키스>, <햄릿>,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고도를 기다리며>,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변신.시골의사>, <동물농장> 등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명작 10선을 가려 뽑고, 정병규, 안상수, 이상봉, 이돈태, 박훈규, 김한민, 슬기와 민, 박시영, 박우혁, 박진우 등 각 분야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장정을 꾸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책들을 탄생시켰다.
저자소개
사뮈엘 베케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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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남쪽 폭스록에서 유복한 신교도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과 이탈리아문학을 공부하고 단테와 데카르트에 심취했던 베케트는 졸업 후 1920년대 후반 파리 고등 사범학교 영어 강사로 일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었던 제임스 조이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그는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에 대한 비평문을 공식적인 첫 글로 발표하고, 1930년 첫 시집 『호로스코프』를, 1931년 비평집 『프루스트』를 펴낸다. 이어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지만 곧 그만두고, 1930년대 초 첫 장편소설 『그저 그런 여인들에 대한 꿈』(사후 출간)을 쓰고, 1934년 첫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을, 1935년 시집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을, 1938년 장편소설 『머피』를 출간하며 작가로서 발판을 다진다. 1937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프랑스에서 전쟁을 치르고, 1946년 봄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후 198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수십 편의 시, 소설, 희곡, 비평을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쓰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스스로 번역한다. 전쟁 중 집필한 장편소설 『와트』에 뒤이어 쓴 초기 소설 3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프랑스 미뉘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1952년 역시 미뉘에서 출간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파리, 베를린, 런던, 뉴욕 등에서 수차례 공연되고 여러 언어로 출판되며 명성을 얻게 된 베케트는 1961년 보르헤스와 공동으로 국제 출판인상을 받고,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희곡뿐 아니라 라디오극과 텔레비전극 및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당대의 연출가, 배우, 미술가, 음악가 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평생 실험적인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1989년 12월 22일 파리에서 숨을 거뒀고,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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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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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의 작가이자 역사가. 1918년 12월 11일 러시아 끼슬로보쯔끄의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난 솔제니찐은 로스또프 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고, 모스끄바 철학.문학.역사학 대학의 통신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포병 중대 장교로 참전해 두 개의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45년 2월, 솔제니찐은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스딸린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8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모스끄바의 루비얀까 형무소에서부터 각지의 수용소를 체험했고, 형기가 끝난 1953년부터는 유형지에서 생활했다. 흐루쇼프의 집권과 스딸린 격하 운동의 영향으로 1956년 석방되었다. 랴잔에 정착한 그는 물리와 수학 교사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2년 첫 작품 『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를 발표하여 소련과 서방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흐루쇼프 실각 이후 분위기가 바뀌어 작품 출간이 거부당하고, 원고를 압수당했다. 197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당시에는 소련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상을 받으러 가지 못했다. 1974년 2월에 체포되어 독일로 추방되었다. 스위스로 이주했다가 1976년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버몬트주 캐번디시에 살면서 『붉은 수레바퀴』의 집필에 매달렸다. 1994년 5월, 20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왔으며 2008년 8월 3일 모스끄바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수용소군도』는 솔제니찐 자신이 직접 등장하는 실명 작품인 동시에 200명이 넘는 다른 죄수들의 이야기와 기억과 편지들의 기록이다. 『수용소군도』 제1부와 제2부는 1967년에 이미 완성되었으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출판을 미루다가 원고 일부가 KGB에 발각되었다. 솔제니찐은 집필을 중단하고 남은 원고를 서방으로 밀반출시켰고 그 원고들은 1973년 12월에야 파리 YMCA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데 성공했다. 제3부와 제4부는 1974년, 제5부에서 제7부까지는 1976년 발표했다. 전 세계 35개 언어로 번역되어 3천만 부 이상 판매된 이 책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기록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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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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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9년 8월 28일 독일 마인강 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부친 요한 카스파르(Johann Kaspar) 괴테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황실 고문관이라는 명예직을 가진 부유한 시민으로 합리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Katharina Elisabeth)는 라틴계 특유의 풍부한 감정과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의 여성으로 어린 아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인형극을 접하게 하여 아들의 예술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괴테는 1765년 10월 부친 뜻에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한다. 1771년 8월 법학석사 학위 시험을 치른 뒤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에서 변호사로 일을 시작하지만 본업보다는 문학에 더 힘을 기울인다. 이 시기 〈무쇠 손 괴츠 폰 베를리힝겐〉(1773)을 발표한다. 이후 3년은 괴테 일생에서 가장 풍성한 결실의 기간이다. 《젊은 베르터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1744)도 이때 발표된다.
1776년 괴테는 추밀원 고문관에 임명되는 것을 시작으로 10년간 여러 분야의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1782년에 재무상이 되는 한편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로부터 귀족 작위도 받는다. 이 시기 바이마르 궁정의 여관 샤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의 정신적 교류 영향으로 질풍노도기의 과도한 격정에서 벗어나 조화와 중용을 지향함으로써 좀 더 원숙한 문학 세계로 들어선다. 그 밖에 괴테는 지질학, 광물학, 해부학, 식물학 등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한다. 1786년 9월 3일 괴테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바이마르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탈리아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을 접한 괴테는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키고 중용을 지키며 교양을 갖춘 원숙한 인간상을 절제된 언어와 짜임새 있는 형식으로 표현하려는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한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 별 성과 없이 여러 해를 지내던 괴테는 10년 연하의 실러와 아름다운 우정 관계를 맺는다.
1828년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사망과 2년 뒤 아들의 죽음으로 최대 시련을 맞은 괴테는 미완성 작품에 매달림으로써 그 시련을 극복하려고 한다. 〈파우스트〉는 그때까지 인간 정신이 이룩한 모든 것과 예언적으로 이후에 창조될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방대한 스케일, 다양한 운율, 풍부한 상징 등으로 독일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대작이다. 인간의 한평생이라 할 수 있는 6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파우스트〉의 완성과 함께 괴테의 일생도 종결된다. 괴테는 1832년 3월 22일 향년 83세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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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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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4년 4월 23일 존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 사이에서 태어났다.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운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 스트랫퍼드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고,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주로 《성경》과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라틴어 격언도 암송하곤 했다. 열한 살에 입학한 문법 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성경》과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그리스어도 배웠지만 그리 신통하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동시대 극작가 벤 존슨은 “라틴어는 신통하지 않고, 그리스어는 더 말할 것이 없다”라고 셰익스피어를 조롱하기도 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 무대 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는 그를 위대한 극작가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제대로 교육받지는 못했지만,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운 자연의 아들이자 천재였다.
1590년대 초반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이 런던 무대에서 상연되었다. 특히 《헨리 6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에 대해 악의에 찬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작품은 인기를 더해 갔다. 1623년 벤 존슨은 그리스와 로마의 극작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셰익스피어뿐이라고 호평하며, 그는 “어느 한 시대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1668년 존 드라이든은 셰익스피어를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고 극찬했다.
셰익스피어는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10편의 비극(로마극 포함), 18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그리고 시집 《소네트》를 집필했다. 38편의 희곡 작품들은 상연 연대에 따라 대개 4기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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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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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 12월 16일, 잉글랜드 햄프셔의 시골 목사인 아버지 조지 오스틴과 어머니 커샌드라 리 오스틴 사이의 6남 2녀 중 일곱 번째이자 둘째 딸로 태어났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영국 사회의 전환기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놀랍도록 세밀하게 그려낸 작가이다.
제인 오스틴은 무도회와 연애, 가족과 결혼 같은 소재를 통해 인간의 자존심, 편견, 이성, 감성, 그리고 사회적 위선을 재치 있게 드러냈다. 문체는 부드럽지만 결코 순응적이지 않았고, 풍자와 아이러니를 통해 여성의 내면과 사회적 위치를 정교하게 묘사했다. 남녀의 사회적 역할과 계급적 제약이 뚜렷했던 시대에 여성으로서 독립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오스틴은 생전 대부분의 작품을 익명으로 출간해야 했는데, 《이성과 감성》의 표지는 “어떤 숙녀에 의해(By a Lady)”로 되어 있었고, 《오만과 편견》은 “《이성과 감성》의 저자가 쓴(By the Author of Sense and Sensibility)”로 소개되었다. 그녀의 본명 ‘Jane Austen’이 처음 표지에 등장한 것은 사후 출간된 《설득》과 《노생거 사원》부터였다.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은 출간 이후 200년 넘게 사랑받으며,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문학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오스틴이 창작해낸 작품 속 인물들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쉬듯 생생하며, 특히 엘리자베스 베넷, 에마 우드하우스, 앤 엘리엇 등은 초기 페미니즘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제인 오스틴은 1817년,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그녀의 대표적인 소설 여섯 작품은 “영국 소설의 정수이자 현대적 인간 심리의 기초”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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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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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가·저널리스트.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1903년 6월 25일, 인도 아편국 관리였던 아버지의 근무지인 인도 북동부 모티하리에서 태어났다. 첫돌을 맞기 전 영국으로 돌아와 “하급 상류 중산층”으로 명문 기숙학교인 세인트 시프리언스와 이튼을 졸업한 뒤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식민지 버마로 건너가 영국의 경찰간부로 일한다.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경찰직을 사직한 뒤, 자발적으로 파리와 런던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1933)을 발표한다. 1936년은 오웰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이다. 그해 잉글랜드 북부 탄광촌을 취재하여 탄광 노동자의 생활과 삶의 조건 등을 담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을 쓰고, 이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주자마자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스페인내전에 참전하여 『카탈로니아 찬가』(1938)를 펴내면서 자신의 예술적·정치적 입장을 정리해나간다. 그러한 전환점 이후 폐렴 요양차 모로코에 가서 『숨 쉬러 나가다』(1939)를 쓴다. 2차세계대전 중에는 BBC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했고 이후 <트리뷴>의 문예 편집장, <옵저버>의 전쟁 특파원 노릇도 한다. 1945년에는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정치 우화 『동물농장』을 출간한다. 또 다른 대표작 『1984』(1949) 집필 중 폐결핵 판정을 받은 그는 1950년 1월 21일, 마흔여섯 나이로 숨을 거둔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오웰이 작가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뒤 한 진보단체로부터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들의 실상을 취재하여 글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고, 두 달 동안 랭커셔와 요크셔 일대 탄광 지대에서 광부의 집이나 노동자들이 묵는 싸구려 하숙집에 머물며 면밀한 조사활동을 벌인 결과물이다. “실업을 다룬 세미다큐멘터리의 위대한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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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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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7월 3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한 보헤미아 왕국(지금의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독일계 인문 중고등학교인 김나지움에서 교육받았다. 1901년 프라하의 독일계 대학인 카를 페르디난트대학교에 입학해 화학을 공부하다 법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한때 독문학에 관심을 두고 독문학을 전공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 무렵 평생의 벗 막스 브로트를 만나 교우하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더욱 키워갔지만 결국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법학 공부를 이어가 1906년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년간 법원에서 법률 시보로 실습하고 보험회사에 입사했다. 대학 시절부터 문학 창작에 뜻을 두고 단편소설과 산문을 집필해왔으나 고된 회사 업무로 글을 쓸 여력이 없을 정도가 되자 1908년 ‘보헤미아왕국 노동자재해보험공사’로 직장을 옮기고, 14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쓰기에 열중했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은 후에도 계속 작품을 집필했으며 1922년 병의 증세가 악화해 직장에서 퇴직한 후 1924년 6월 3일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요양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카프카는 숨을 거두기 전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유고를 모두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브로트는 카프카의 많은 작품과 일기, 편지 등을 편집, 출판해 카프카의 삶과 문학 세계를 세상에 널리 알렸다. 주요 작품으로 〈변신〉 〈시골 의사〉 〈단식 광대〉 등 중단편과 장편 《실종자》 《소송》 《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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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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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독일 남부 도시 칼프에서 개신교 목사이자 선교사인 아버지와 유서 깊은 신학자 가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스위스 바젤과 칼프에서 성장했다. 열다섯 살 때 재학 중이던 신학교를 그만두며 “시인이 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라고 결심한 헤세는 그해 6월 삶의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기도, 정신병원에 입원해 신경쇠약 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 인문계 중등학교인 김나지움을 다니다 다시 학업을 중단했고, 시계 공장과 서점 등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하며 글쓰기에 전념했다. 1899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첫 산문집 『자정 너머 한 시간』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자정 너머 한 시간』 출간을 결정한 독일 디더리히스 출판사의 대표 오이겐 디더리히스는 “이 책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만큼 더 그 문학적 가치를 확신한다”라며 헤세에게 작가로서의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 책으로 독일 문학계에 이름을 알린 헤세는 1904년 『페터 카멘친트』로 큰 주목을 받으며 일약 유명 작가로 발돋움했고, 『수레바퀴 아래서』, 『크눌프』, 『청춘은 아름다워』 등을 발표하며 입지를 탄탄하게 다졌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독일포로구호’에서 일하며 전쟁포로들과 억류자들을 위한 잡지를 발행하는 한편, 정치적 논문과 선전문 등을 발표하며 전쟁의 비인간성을 규탄했다. 이런 활동들로 인해 그의 작품들은 독일 내에서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전쟁 기간 당시 정신적 어려움을 겪다 카를 구스타프 융에게 심리치료를 받았으며, 종전 뒤인 1919년에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데미안』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젊은 독자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작품성 역시 인정받아 베를린시에서 주관하는 폰타네상을 수상했다. 이후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황야의 이리』, 『유리알 유희』 등 여러 작품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군국주의와 국가주의에 비판적이고 나치를 경계한다는 이유로 그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고, 나치 집권 이후에는 독일 내에서 작품의 제작과 판매가 어려워졌다. 종전 뒤인 1946년부터 독일에서 다시 헤세의 작품이 출간되기 시작했고, 같은 해 노벨 문학상과 괴테상을 수상했다. 1950년 브라운슈바이크시에서 주관하는 빌헬름 라베 상을, 1955년 서독출판협회에서 주관하는 평화상을 수상했다. 1962년 스위스 몬타뇰라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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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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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에 태어나서 1692년까지 살았다. 명문가인 광산 김씨 집안에서 태어나 대사헌과 대제학 들을 지낸 문신이자 소설가다. 서인의 핵심 인물로 남인과의 당쟁에 휘말려 여러 차례 유배 생활을 했다. 기사년에 인현왕후가 궁에서 쫓겨나던 일로 남해에 귀양 가 그곳에서 쉰여섯 살로 죽었다. 유배 생활을 하면서 여러 문학작품을 썼다. <사씨남정기>와 <구운몽>도 이 시기에 쓴 것으로 보인다.
김만중은 《서포만필》에서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은 제 말을 버리고 남의 나라 말을 배우고 있는데, 그것이 제아무리 비슷하더라도 앵무새가 사람을 흉내 내는 데 지나지 않는다. 마을의 나무하는 아이와 물 긷는 아낙네들이 흥얼거려 서로 화답하는 소리가 비록 비속하다고 하나 참과 거짓을 따진다면 사대부들의 시부 따위와는 결코 같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라며 우리말 우리글로 된 문학을 높이 쳤다. 그리고 진수의 《삼국지》를 읽고 운 사람은 없으나,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읽고는 사람들이 운다면서 소설의 힘을 역사책보다 앞세웠다.
한글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썼고, 악부와 가곡도 지었다면 전하며, 평론집 《서포만필》과 문집 《서포집》이 전한다. 한글 소설을 여러 편 썼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안타깝게도 더 남아 있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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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푸익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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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아르헨티나의 헤네랄 비예가스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부터 극장에 드나들며 영화감독을 꿈꿨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 건축학부에 진학하나 적응하지 못하고, 영화 공부에 필요한 이탈리아어와 영어 등 외국어를 익힌다. 대학 졸업 후 로마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유럽 곳곳을 다니며 시나리오를 쓰지만 결국 소설가로 전향한다. 어린 시절부터 봐온 영화들은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1968년 영화 기법을 차용한 첫 소설 『리타 헤이워스의 배반』이 출간되었고, 이듬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르몽드>의 격찬을 받으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다. 1973년 독재 정권이 지배하는 아르헨티나의 정치 상황에 환멸을 느껴 망명길에 오른다. 첫 망명지인 멕시코에서 쓴 『거미여인의 키스』는 아르헨티나에서는 판매 금지를 당하나 전 세계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이후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진다. 멕시코를 떠나 독일과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문학창작을 가르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90년 멕시코에서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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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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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문화운동가, 전 경희대 영문과 교수, 인간·사회·역사·문명에 대한 인문학의 책임을 강조하고 인문학적 가치의 사회적 실천에 주력해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 인문학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을 역임했다. 2001년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을 일으켜 어린이 전문도서관 ‘기적의 도서관’을 전국 14개 도시에 건립했고 2006년 이후 70개 농산어촌 초등학교에 도서관을 설치했으며 영유아를 위한 ‘북스타트’ 운동, 교사를 위한 독서교육연수 프로그램도 주도해오고 있다. 저서로 『시대로부터, 시대에 맞서서, 시대를 위하여』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공저)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공저) 『불량사회와 그 적들』(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순교자』 『동물농장』 등이 있다.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비평상, 일맥문화대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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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기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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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을 거쳐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한국 독어독문학회와 한국 괴테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독일문학사』 등을 썼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피게니에·스텔라』(공역)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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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선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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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콜롬비아 카이로쿠에르보 연구소에서 석사를, 하베리아나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 후 전임 교수로 재직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보르헤스, 마스케스, 마누엘 푸익 등 라틴아메리카문학의 거장을 국내에 소개했다. 『판텔레온과 특별봉사대』 『픽션들』 『거미 여인의 키스』 『염소의 축제』 등 다양한 라틴아메리카문학을 번역했으며, 제11회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다. 현재 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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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증자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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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대 교수와 월간 「샘터」의 주간을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 <바다의 침묵>, <에밀>, <몽테크리스토 백작>, <위기의 여자, 아름다운 영상>, <프랑스현대희곡집 1, 2, 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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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관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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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영문과 졸. 동 대학원에서 매슈 아놀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덕성여대 영문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근대사회의 교양과 비평』 『놋쇠하늘 아래서』 『세계문학을 향하여』 등이, 옮긴 책으로 『현대문학이론의 조류』 『오만과 편견』(공역) 『이성과 감성』 『노생거 사원』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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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애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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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를 졸업하고, 1996년부터 동 대학교 독어독문학과교수로, 현재는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독일프라이부르크고등연구원의 수석연구원, 뮌헨대학교의 초빙교원을 겸임했다. 2011년 세계적인괴테 연구자들에게 바이마르 괴테학회가 수여하는 ‘괴테 금메달’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2020년 삼성행복대상 여성창조상, 2022년 한독협회의 제11회 이미륵상을 수상했다.
《어두운 시대와 고통의 언어–파울 첼란의 시》《괴테와 발라데》《서·동 시집 연구》《독일의 현대문학–분단과 통일의 성찰》 등 많은 연구서,《카프카, 나의 카프카》《프란츠 카프카를 위한무지개》 등의 시집을 국내와 독일에서 펴냈으며《파우스트》《서·동 시집》《괴테 시전집》《데미안》《변신·시골의사》《나누어진 하늘》《나와 마주하는 시간》《은엉겅퀴》《그림동화》등 60여 권의 독일 문학을 우리말로 옮겼고 산문집《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인생을 배우다》 등을 통하여 소개했다. 한 번 역자의 손에서 나온 국역 괴테 전집을 기획하여 번역과 출간에 힘을 쏟고 있다.
2014년 여백서원을 짓고, 이어 괴테마을을 조성해가며 운영하고 있다. 여백서원에서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 ‘월마토’ 강연회, 셋째 주 토요일 낭독회,《파우스트》독회 등 여러 개의 독회, 작은 음악회, 청년인문강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보다 넓은 나눔을 위해서 ‘괴테할머니TV’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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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철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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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와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문학 석사 학위, 미시건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셰익스피어와 희곡 연구를 바탕으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의 명예교수이다. 1993년부터 셰익스피어 작품을 운문 형식으로 번역하는 데 매진하여,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인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 왕』과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등을 번역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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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의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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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러시아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고리키 세계문학연구소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모스크바 교육대학교에서 「마리나 츠베타예바 민담 장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등에서 러시아 문학을 강의했다.
옮긴 책으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찌질한 악마』, 『암병동』, 『대위의 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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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욱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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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고전소설이 주전공이며, 저서로 <한국대하소설의 미학>, <조선시대 대하소설의 서사문법과 작가의식>, 역서로 <구운몽>, <춘향전>, <사씨남정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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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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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각 문화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퍼이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2012년 조기 은퇴 후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을 설립했고 2024년까지 날개(교장)를 맡았다. 2007년 독일 라이프치히시로부터 구텐베르크상을 받았으며, 베이징 중앙미술학원(CAFA) 특빙교수, 국제그래픽디자인연맹(AGI)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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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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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불문학을 파리 에콜에스티엔느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민음사 편집부장을 지냈으며 홍성사를 설립하여 출판과 편집을 거쳐 70년대 중반부터 북디자인을 독립 디자인 영역으로 주장하였다. 1979년에 이윤기와 편집회사 ‘여러가지문제연구소’를 설립했고, 1985년에 정병규디자인을 설립해 지금까지 디자이너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중앙일보 아트디렉터로 신문디자인에도 종사했으며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장, 한국영상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교보북디자인대상(1989년), 한국출판문화상 백상특별상(2013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2013년)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정병규 디자인’과 ‘정병규 학교’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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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혁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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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와 스위스 바젤디자인대학교에서 그래픽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했고, 최근 홍익대학교에서 한글 타이포그래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디자이너 진달래와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 ‘타입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단체와 함께 사회, 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디자인과 작업을 하고 있다. 몇몇 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를 강의하고 있으며, 『A Diary』, 『스위스 디자인 여행』 등의 책을 쓰고 디자인했다.
http://www.typep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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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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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지만, 콘서트장에서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디자이너다. 그는 여러 뮤지션들과 현장에서 직접 호흡하며, 음악을 이미지로 구현하는 VJ로 대중들을 만난다. 그는 음악과 디자인을 매개로 여러 방면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새로운 디자인문화를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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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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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창작 집단 '이동시'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비수기의 전문가들』, 『착한 척은 지겨워』 등의 책을 쓰고 그렸다. 현재 리스본 고등사회과학연구원(ISCTE) 박사과정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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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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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으나 집안의 반대로 꿈을 접고 미술 대신 디자인을 택했다. 삼수 끝에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 들어갔고, 졸업 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Royal Collage of Art, RCA) 제품디자인과에 들어갔다. 1998년 영국의 대표 디자인 회사 탠저린에 인턴으로 입사한 후 7년 만에 공동 대표 자리에 올랐다. 탠저린에서 진행한 영국항공 비즈니스 클래스 디자인으로 항공기 인테리어 디자인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왔고, 항공사에는 지금까지 10조 원이 넘는 영업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물산 건설 부문 주택사업부의 디자인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아파트 디자인 콘셉트를 구축하는 일들을 했으며, 이때 디자인한 한국형 욕실로 2008년 대한민국 굿 디자인대상 대통령상을 비롯해 독일의 레드닷과 iF 디자인 어워드를 여러 차례 수상했다. 그 외 수상 내역으로는 영국의 IDEA 그랑프리상, 미국 굿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고, 2012년 중앙일보가 선정한 한국의 대표 디자이너 ‘K-디자인 10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2007년 중앙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한국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CEO’상과 2009년 프리챌이 주관한 대한민국 창조경영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런던과 서울에서 디자인 컨설팅 회사 탠저린을 운영하면서 도요타, 시스코, 히드로 익스프레스, LG전자, 삼성물산, 삼성전자, SK텔레콤, 아시아나항공, 현대중공업, 아모레퍼시픽 등과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고, 지금도 20여 개의 국내외 글로벌 기업 및 중소기업의 의뢰를 받아 각 기업과 제품에 맞는 디자인 전략을 세우고 있다. 2005년부터 모교인 홍익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과 겸직 교수로, 2013년부터 베이징성시대학교(北京城市學院)에서 객좌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전 세계를 무대로 디자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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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영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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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전라남도 진상읍에서 태어났다. 2002년부터 인디포럼,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리얼판타스틱영화제,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했다. 2006년 영화 「짝패」의 포스터 디자인을 시작으로 영화 포스터를 포함하는 비주얼 에이전시 '빛나는'을 창립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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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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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태어나 서울대 공예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왕립 예술 대학에서 제품 디자인을 공부했다. 워커힐 호텔 아이스 링크, 갤러리아 백화점 등에서 아트 디렉터를 맡았고 베이징, 런던 등지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네덜란드의 디자인 전문 잡지 「프레임」의 주목을 받는 등 국내 안팎으로 활동이 분주한 전방위 팝 아티스트이다. 대표작으로 길거리에 넘쳐 나는 짝퉁 루이비통 가방에 대한 풍자를 담은 ‘페이크(fake) 가방’, 전선을 자유롭게 늘어뜨려 고정관념을 깬 ‘스파게티 샹들리에’, 해외에서 3만 개가 넘게 팔린 ‘5분 양초’ 등이 있다. 2005년에는 차세대 디자인 리더 상을 수상했다. 현재 디자인 스튜디오 ‘쥐엔피 크리에이티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환타스틱 아티스틱 서울팀’이라는 복합 문화 집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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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봉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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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기성복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중앙콘테스트에 입상, 그 다음해 디자이너로 일한 지 5년 만에 이상봉이라는 이름으로 명동에 매장을 열면서 본인의 이름을 걸고 디자이너로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1993년 첫 정식 패션쇼 SFAA 컬렉션에서 ‘환생’을 테마로 지금으로서도 충격적인 퍼포먼스로 많은 논란을 가져왔다.
그 이후로 다양한 퍼포먼스 뿐만 아니라 그의 시그니처인 구조적이고 기하학적인 디자인에 동양적인 요소들을 접목해 세계무대에 선보이고 있다. 2002년 패션의 본고장 파리로 진출해 12년 동안 쉴 새 없이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고, 특히 한글을 패션에 접목한 디자인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큰 파란을 일으켰다. 많은 것들을 이룬 지금도 그의 도전은 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2014년 패션 비즈니스의 메카인 뉴욕패션위크에 데뷔 무대를 가지며, 맨하튼 밋패킹에 단독매장을 오픈했다.
이상봉은 단지 작품으로써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반영하는 것, 이것이 그가 추구하는 진정한 패션디자인의 가치다. 이에 따라 2007년 LG전자 샤인폰을 시작으로 금호건설 아파트 인테리어, KT&G 담배 케이스, A1 그랑프리 한국팀 자동차 디자인, 행남자기 이상봉 에디션 등 수없이 많은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보그, 엘르, 바자, 뉴욕타임즈, W 등의 주요 매체들을 통해 ‘한국의 알렉산더 맥퀸’으로 세계 각국에 소개되고 있으며, 역대 한국의 영부인과 비욘세, 리한나, 레이디 가가, 줄리엣 비노쉬 등 세계적인 셀레브리티들이 그의 의상들을 찾고 있다.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영국 런던), 파워하우스 뮤지엄(호주 시드니), 웰트 뮤지엄(오스트리아 비엔나) 등 세계의 유서 깊은 박물관에 그의 의상들이 영구전시 되어 있으며,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러시아 등 외국과의 수교 행사에서 기념 패션쇼를 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써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는 2009년 올해의 디자이너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2012년 발족한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CFDK)의 회장을 역임하면서 한국 패션계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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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와 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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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와 민은 서울 근교에서 일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미국 예일 대학교 그래픽 디자인 석사 과정에서 만났고,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의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다음 2005년 한국에 돌아와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 갤러리 팩토리에서 연 첫 단독전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미술 부문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다. 2017년에는 서울 페리지 갤러리에서 단독전 <슬기와 민: 페리지 060421~170513>을 열었다. 2013년 워크룸프레스와 합작으로 공동 임프린트 ‘작업실유령’을 설립했고, 이를 통해 미술과 디자인의 최근 역사에 주로 관심을 두는 책을 출간했다. 현재 최슬기는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최성민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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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파란물*
★★★★☆(8)
([마이리뷰]환희...그리고 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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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루*
★★★★★(10)
([100자평]특별판, 한정판, 소장본... 책 하나마다 디자이너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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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남*
★★☆☆☆(4)
([마이리뷰]200권 중에 겨우 이런 책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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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우*
★☆☆☆☆(2)
([100자평]개성일까?무질서일까?일정상의문제일까?통일감없는판형과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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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10)
([100자평]세기적인 작품과 최고의 디자이너들의 만남... 이런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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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르*
★★★☆☆(6)
([100자평]장정 자체는 흠 잡을 것이 없다. 다만 제본 마감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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