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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명사에세이 > 문인에세이
· ISBN : 9788901080963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08-05-01
책 소개
목차
차례
이해인 내 안에 계신 작은 하느님
오정희 딸의 어머니
함정임 그 옛날 어머니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황주리 어머니가 좋아하는 노래, 나의 애창곡
이윤택 나를 부끄럽게 하는 이바구
서하진 발길을 돌리려고...
이명랑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올 때에
김세영 산골짝의 등불
공선옥 울엄마는 아랫정재나무에 계신다
조현 저 비둘기를 잡지 마라
임진모 어머니의 애창가요 선집
박재영 왜 하필 섬마을 총각 선생님이었을까?
김수정 이놈들아, 어서 커라!
윤숙자 검지손가락의 흉터
신승철 헤일 수 없을 수많은 밤
이홍렬 나는 오늘도 기적을 꿈꾼다
고진하 만경창파 위로 띄운 그 노래
김문환 훈장
황아라 모정의 세월
김다은 아모레 미오
김지혁 연결의 실타래
이상금 치마저고리
최선호 영원한 사랑
설도윤 나 어릴 적 속상해 울던 어머니
김현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엄마는 음치다. 자기가 음치인 줄도 모르는 음치다. 그런데도 엄마는 노래를, 정말, 열심히 부르고 또 부른다. 나이가 들어 관절염이 심해지면서, 식당 문을 닫은 뒤로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푼돈이나마 당신 마음껏 쓰던 때와는 달리 자식들에게 용돈을 의지하게 되면서부터 엄마는 더 열심히, 그럴 수 없을 만큼 애절하게 노래를 부른다.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시이인~세, 비 나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엄마는 한껏 감정을 잡으며 노래를 부르다 말고 "둘째야!" 하고, 나를 찾는다. - 본문 72쪽에서
어머니는 그 후로 슬플 때나 힘들 때면 꼭 '동백아가씨'를 흥얼거리셨다. 지금도 노래방에선 여지없이 '동백아가씨'다. 그 곱던 살결과 모습만 세월과 함께 사라졌을 뿐이다. 나는 '동백아가씨'가사 속의 주인공이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나 어릴 적 속상해 울던 어머니를 떠올려보면 울다 지쳐 꽃잎마저 빨갛게 멍든 '동백아가씨'와 닮았다. - 본문 216~217쪽에서
발끼이를 돌리려고 바람 부는 대로 걸어도 돌아써어지 안는 거어쓴 미련인가 아씨움인가아…… 시어머니가 운을 떼면 아들들이 뒤이어 합창을 한다. 가씀에 이 가쓰으메 심어둔 그 싸아랑이 이다지도 깊을 줄을 나안 정말 모올랐었네에에에 아아아아 아아아아 진정 난 몰라았었네에에에…… 중간중간 시어머니는 춤추듯 한두 바퀴 맴을 돌고 사위와 딸들이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추노라면 지나던 사람들이 싱글거리며 쳐다보지만 시어머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어머님 오늘 그 노래 열 번은 부르셨어요. 그 노래가 그리 좋으세요? 어머님은 눈을 뜨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셨다. 노래 안 좋으나, 가사도 그렇고. 말씀을 길게 하는 양반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나는 또 물었다. 그래도요, 어머님,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 같잖아요. 그래 들리드나, 하신 시어머니가 피식 웃음을 흘리셨다. 내가 야야, 몇 번이고 발길을 돌리라꼬, 돌릴라꼬, 카다가 못 돌렸잖나…… 열아홉에 시집가주고…… 옛날에 말이다…… ―"발길을 돌리려고" (서하진) 글 중에서
하루는 집에서 텔레비전 드라마 원고를 치고 있는데 옆에서 물으셨다. “이거 한 장 치는 데 얼마고?” 하고. “십만 원 정도 하요” 했더니 “뭐라꼬?! 그리 많이 주나? 그라믄 내 이바구 받아쓰라. 한 장에 만 원씩만 나 주고” 하셨다. 타이핑된 원고 한 장이 십만 원쯤의 돈으로 환급된다는 말에 어머니는 놀라셨다. 그리고 당신의 이바구를 드라마로 꾸미면 우리 집안이 졸지에 벼락부자가 될 거라고 믿으셨다. “니가 쓴 드라마를 봤는데 재미없더라. 시시콜콜한 월급쟁이들 사랑 타령이 이바구거리나 되나? 니는 내 이바구 대서방 노릇이나 하믄 되는기라” 하면서 어머니는 이번 기회에 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털어놓으려고 하셨다.
나는 아차 싶어서 엉뚱한 꾀를 내어 “나한테 털어놓기 전에 녹음기에 대고 이바구를 하소” 했더니 “사람이 사람한테 이바구를 해야지 녹음기에 대고 무슨 말을 하노” 하여서, “아, 어무이 말을 어째 다 받아 치요. 우선 녹음기에 대고 말을 해놔야 내가 듣고 또 듣고 하믄서 이야기를 꾸밀 꺼 아니오” 했다. 그날부터 어머니에게는 새로운 말동무가 생겼다. “아, 아, 내 말 들리나? 잘 들리나? 예예, 제가 황두기올시다. 그라믄 마 녹음합니다……”로 시작된 어머니의 이바구는 벌써 테이프로 몇 십 개가 되었다. 이 테이프는 고작 한두 달 사이에 녹음된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녹음기와 그보다 더 오래는 친하지 못하셨다. 아무래도 사람한테 말을 해야 신명이 나지 기계에 대고는 그러지 못하며 재미도 없고 생각도 잘 안 난다는 것이다. ―"나를 부끄럽게 하는 이바구"(이윤택)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