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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

탱자

(근현대 산문 대가들의 깊고 깊은 산문 모음)

강운구, 권정생, 김서령, 김영태, 김용준, 김지연, 김화영, 박완서, 백석, 법정, 신영복, 안규철, 오규원, 오정희, 윤택수, 윤후명, 이상, 이태준, 장석남, 정현종, 함민복, 황병기, 유소림 (지은이), 박미경 (엮은이)
  |  
봄날의책
2021-11-10
  |  
12,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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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

책 정보

· 제목 : 탱자 (근현대 산문 대가들의 깊고 깊은 산문 모음)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6372913
· 쪽수 : 220쪽

책 소개

엮은이 박미경의 안목과 취향에 의지해 고르고 고른 스물두명의 작가, 서른일곱 편의 산문. 이 산문들은 예외없이, 어떤 소중한 것에 반응하는 우리의 감각을 일깨운다.

목차

1.
오규원, <한 양종 나팔꽃과 함께>
오규원, <탱자나무의 시절>
김지연, <부덕이>
김서령, <사과>
김서령, <과꽃이 피었다>
유소림, <발자국>
유소림, <산 것들, 죽은 것들>
윤후명, <나무의 이름>
윤후명, <보랏빛 꽃을 손에 들고>
장석남, <아주 조그만 평화를 위하여>
장석남, <가만히 깊어가는 것들>

2.
오정희, <나이 드는 일>
오정희, <낙엽을 태우며>
박완서, <트럭 아저씨>
함민복, <찬밥과 어머니>
함민복, <죄와 선물>
김화영, <이삿짐과 진실>
법정, <탁상시계 이야기>
정현종, <메와 개똥벌레>
정현종, <재떨이, 대지의 이미지>
권정생, <목생 형님>

3.
김영태, <풍경·E 베니스에서의 죽음>
김영태, <풍경·F 애칭에 대해서>
강운구, <어디에 누울 것인가>
강운구, <길에서 길을 잃다>
황병기,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
신영복,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안규철, <어린 시절 창가에서>
안규철, <그릇들>

4.
윤택수, <훔친 책, 빌린 책, 내 책>
김용준, <구와꽃>
김용준, <두꺼비 연적을 산 이야기>
이태준, <벽>
이태준, <고독>
백석, <해빈수첩>
백석, <동해>
이상, <산촌여정_성천 기행 중의 몇 절>

저자소개

강운구 (글)    정보 더보기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의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는 국면들을 끊임없이 기록해왔으며, 외국 사진 이론의 잣대를 걷어내고 우리의 시각언어로써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적 영상을 개척하여 가장 한국적인 질감의 사진을 남기는 사진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연 또는 필연」(1994, 학고재), 「모든 앙금」(1997, 학고재), 「마을 삼부작」(2001, 금호미술관), 「저녁에」(2008, 한미사진미술관), 「오래된 풍경」(2011, 고은사진미술관) 등의 개인전을 했으며 여러 그룹전에 참여했다. 사진집으로 『내설악 너와집』(광장, 1978), 『경주남산』(열화당, 1987), 『우연 또는 필연』(열화당, 1994), 『모든 앙금』(학고재, 1997), 『마을 삼부작』(열화당, 2001), 『강운구』(열화당, 2004), 『저녁에』(열화당, 2008), 『오래된 풍경』(열화당, 2011)이 있다. 저서로 『강운구 사진론』(열화당, 2010)이, 사진과 함께한 산문집으로 『시간의 빛』(문학동네, 2004), 『자연기행』(까치글방, 2008)이 있으며, 공저로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까치글방, 1999), 『능으로 가는 길』(창비, 2000), 『한국악기』(열화당, 200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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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귀국했으며, 안동 일직국민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68년부터 교회 종지기 일을 하며 동화를 썼고, 그 뒤 교회 뒤편에 있는 빌뱅이 언덕 아래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살다가 2007년 5월 17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강아지똥》 《사과나무 밭 달님》 《하느님의 눈물》 《몽실 언니》 《초가집이 있던 마음》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점득이네》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짱구네 고추밭 소동》 《오소리네 집 꽃밭》 《먹구렁이 기차》 《밥데기 죽데기》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비나리 달이네 집》 《랑랑별 때때롱》 《용구 삼촌》 등의 동화책을 펴냈습니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홈페이지(http://www.kcfc.or.kr)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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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고,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 평론가, 불문학 번역가로 활동하며 팔봉 비평상, 인촌상을 받았고,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되었다.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지은 책으로 『여름의 묘약』, 『문학 상상력의 연구』, 『행복의 충격』, 『바람을 담는 집』, 『한국 문학의 사생활』 등이, 옮긴 책으로 미셸 투르니에, 파트리크 모디아노, 로제 그르니에, 르 클레지오 등의 작품들과 『알베르 카뮈 전집』(전 20권), 『섬』, 『마담 보바리』, 『지상의 양식』, 『어린 왕자』, 『다다를 수 없는 나라』,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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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1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소학교를 입학하기 전 어머니, 오빠와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숙명여고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6‧25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53년 결혼하여 1남 4녀를 두었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2011년 1월 담낭암으로 타계하기까지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하며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과 15편의 장편소설을 포함, 동화, 산문집, 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남겼다.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중앙문화대상(1993), 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한무숙문학상(1995),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 인촌문학상(2000), 황순원문학상(2001), 호암예술상(2006) 등을 수상했고, 2006년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1년 타계 후에는 문학적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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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白石, 1912~1996)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로 평가받는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학교와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과를 졸업했다. 1934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했고,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8월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 『여성』지 편집 주간,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직원, 만주 안둥 세관 직원 등으로 일하면서 시를 썼다. 1945년 해방을 맞아 고향 정주로 돌아왔고, 1947년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분과 위원이 되어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이 외에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 편집위원,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1957년 발표한 일련의 동시로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 삼수군 관평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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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옮긴이)    정보 더보기
193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한 후 인간의 선의지를 고뇌하다가 대학 3학년 1학기 때 중퇴하고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다. 1956년 당대 고승인 효봉선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같은 해 7월 사미계를 받은 뒤, 1959년 3월 통도사에서 승려 자운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어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승려 명봉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그 뒤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여러 선원에서 수선안거했고,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역경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및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1975년 10월에는 송광사 뒷산에 직접 작은 암자인 불일암을 짓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면서 홀로 살았다. 1994년부터는 시민운동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끄는 한편, 1995년에는 서울 도심의 대원각을 시주받아 길상사로 고치고 회주로 있다가, 2003년 12월 회주직에서 물러났다. 강원도 산골의 화전민이 살던 주인 없는 오두막에서 직접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면서 무소유의 삶을 살았으며, 2010년 3월 11일(음력 1월 26일) 입적했다. 수필 창작에도 힘써 수십 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였는데, 담담하면서도 쉽게 읽히는 정갈하고 맑은 글쓰기로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 작가로도 문명이 높다. 대표적인 수필집으로는 『무소유』, 『오두막 편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 소리』, 『산방한담』, 『텅 빈 충만』, 『스승을 찾아서』, 『서 있는 사람들』, 『인도기행』, 『홀로 사는 즐거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등이 있다. 그 밖에 『깨달음의 거울』, 『숫타니파타』, 『불타 석가모니』, 『진리의 말씀』, 『인연 이야기』, 『신역 화엄경』 등의 역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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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1년 경남 밀양 삼랑진에서 출생하였고, 부산사범학교를 거쳐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에 「겨울 나그네」가 초회 추천되고, 1968년 「몇 개의 현상」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분명한 사건』(1971), 『순례』(1973),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1981),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1987), 『사랑의 감옥』(1991),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1995),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1999),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2005), 『두두』(2008, 유고시집)가 있다. 이 밖에 시선집 『한 잎의 여자』(1998), 『오규원 시전집』(전 2권, 2002), 『오규원 깊이 읽기』(2002)와 시론집 『현실과 극기』(1976), 『언어와 삶』(1983), 『날이미지와 시』(2005) 그리고 시 창작이론집 『현대시작법』(1990)을 펴낸 바 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대문학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다. 2007년 2월 2일에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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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7년 서울 사직동에서 태어났고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불의 강』, 『유년의 뜰』, 『바람의 넋』, 『불꽃놀이』, 『오정희의 기담』, 장편소설 『새』, 동화집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 산문집 『내 마음의 무늬』 등을 펴냈고, 다수의 작품들이 영어·독일어·프랑스어 등으로 번역 출판되어 일찍이 한국 문학의 대표작들로 해외에 소개되었다. 한국 문학에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드물던 시절부터 자신만의 작품 세계로 탄탄한 입지를 다져 이후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오정희 깊이 읽기』를 비롯하여 수많은 논문과 평론들에서 다양한 맥락으로 주목되어왔다. 만해대상 문예대상(2021), 대한민국문화예술상(2012), 독일 리베라투르상(2003), 동서문학상(1996), 오영수문학상(1996), 동인문학상(1982), 이상문학상(1979)을 수상했다. 현재 강원도 춘천에 살고 있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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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도로건설 차관사업단에서 일했고, 한국여성민우회 편집실장, 주간 《내일신문》 여성부 팀장과 편집위원, 주간 《미즈엔》 편집위원 등을 지냈다. 2006년에 강원도 강릉 연곡면에 귀촌,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으며 2011년부터 ‘동사섭’ 수련생으로 정진 중이다. 1993년부터 《녹색평론》에 시와 산문을 발표해왔고 산문집 《신쥬쿠의 시궁쥐 비둘기》 《살아 키우시고 죽어 가르치시네》 《퇴곡리 반딧불이》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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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명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6년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저서로는 시집 《명궁》 《쇠물닭의 책》, 소설집 《둔황의 사랑》 《협궤열차》 《여우 사냥》 《가장 멀리 있는 나》 《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 《삼국유사 읽는 호텔》 《새의 말을 듣다》 《원숭이는 없다》, 산문집 《꽃》 《나에게 꽃을 다오 시간이 흘린 눈물을 다오》, 화서첩 《윤후명 그리고 쓰다》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동리문학상, 제62회 3·1문화상 예술상, 2023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계간 『문학나무』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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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언제나 우리를 앞질러 나가는 작가.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해경이다. 화가를 지망하였으나 경성 고등 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세부터 조선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에서 건축 기사로 일했다. 1930년 잡지 『조선』에 장편 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며 문단에 등장했다. 1931년 건축 잡지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 시 「이상한 가역반응」 등 20여 편을 발표한다. 이후 직접 다방 <제비>를 운영하며 구인회 구성원이었던 이태준, 김기림, 박태원 등과 교류하며 친목을 쌓았고, 1934년 정식으로 구인회 멤버가 된다. 같은 해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삽화가로 참여하는 동시에 「오감도」를 연재했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거센 반발을 받아 연재가 중단되었는데, 그럼에도 문단에서는 새로운 형식적 실험으로서 높이 평가했다. 1936년 변동림과 결혼 후, 요양을 목적으로 홀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듬해 <불령선인>이라는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 및 구금되었고, 폐결핵을 앓던 그의 병세가 악화된다. 결국 1937년 도쿄 제국 대학 부속 병원에서 27세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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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호는 상허尙虛.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휘문고보 4학년 때 동맹 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1925년 도쿄에서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해 입선했다. 1927년 도쿄 조치대 예과를 중퇴한 후 귀국했다. 1929년 개벽사에 입사, 조선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구인회에 참가했으며, 이후 1930년대 말까지 주로 남녀 간의 사랑과 심리를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1940년경 일제의 압력으로 친일 활동에 동원되었고, 1941년 모던 일본사가 주관하는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1943년 절필 후 낙향했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로 올라왔다. 해방 공간에서 좌익 작가 단체에 가입해 주도적으로 활동, 1946년 <해방 전후>로 제1회 해방문학상을 수상하고 그해 여름에 월북했다. 6·25 전쟁 중엔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와 종군 활동을 했다. 1956년 구인회 활동과 사상성을 이유로 숙청당한 이후 정확한 행적은 알려진 바 없으며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한국 전쟁 이전까지 《까마귀》《이태준 단편선집》《이태준 단편집》《해방 전후》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화관》《청춘 무성》《사상의 월야》 등 장편 13권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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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엮은이)    정보 더보기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뺨에 서쪽을 빛내다》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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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옮긴이)    정보 더보기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견딜 수 없네』 『광휘의 속삭임』 『그림자에 불타다』, 시선집 『고통의 축제』 『이슬』, 시론과 산문을 모은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숨과 꿈』 『날아라 버스야』 『두터운 삶을 향하여』 등과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경암학술상(예술 부문), 파블로 네루다 메달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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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엮은이)    정보 더보기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 출생. 3남 3녀의 막내. 할아버지까지는 귀족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19세기 후반, 강릉 지방의 토호였는데 어떤 변란에 연루돼 충주로 피난을 내려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농부였다. 함민복이 태어난 마을은, 시인의 마을이었다. 신경림을 비롯해, 이름을 알 수 없는 월북시인, 시운동 동인이었던 정한용 시인, 지순 시인 등이 바로 그 마을에서 태어났다. 함민복의 시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름답게 등장할 때는, 그가 유년 시절의 고향을 떠올릴 때이다. 그는 수도전기공고에 입학하면서부터 내내 유년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전기공고에 입학할 때, 보증인을 두 명씩이나 세워, 함부로 그만둘 수도 없었다. 군대 같은 공고 생활을 마치고, 기능사 2급 자격증을 들고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취직할 때에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공고에서 결정된 그의 삶은 당분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1987년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 재학 중인 1988년에 계간<세계의 문학>에 시 '성선설'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89년에는 <아동문학평론>에 ‘강’으로 동시 추천을 받았다. 1990년 첫 시집 『우울 氏의 一日』을 냈고, 그 후 <21세기-전망> 동인으로 활동할 때 썼던 대중문화를 소재로 한 시편들을 모아 『자본주의의 약속>>이란 두 번째 시집을 발간하였다. 시인 친구들과 금호동에서 함께 살며 썼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를 엮으며 서울을 떠나 강화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1996년 문화관광부 주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 첫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를 발간하였다. 강화도 바닷가 마을에서 어부들과 함께 살며 썼던 시 편들을 정리해 10년 만에 네 번째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냈고 이 시집으로 제7회<박용래 문학상>, 제24회<김수영 문학상>, 제2회 <애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강화도에 살며 아직 시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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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6/ 서울 출생 홍익대 서양화과 졸업 1959/ <사상계>에 <설경>, <시련의 사과나무>, <꽃씨를 받아둔다>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2/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1982/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89/ 서울신문사 예술평론상 2004/ 허행초상 2007/ 작고 저서 시집 ≪유태인(猶太人)이 사는 마을의 겨울≫(중앙문화사, 1965) 시집 ≪바람이 센 날의 인상(印象)≫(현대문학사, 1970) 시집 ≪초개수첩(草芥手帖)≫(현대문학사, 1975) 시집 ≪객초(客草)≫(문예비평사, 1978) 시집 ≪북(北)호텔≫(민음사, 1979) 시집 ≪여울목 비오리≫(문학과지성사, 1981) 시집 ≪어름사니의 보행(步行)≫(지식산업사, 1984) 시집 ≪결혼식과 장례식≫(문학과지성사, 1986) 시집 ≪느리고 무겁게 그리고 우울하게≫(민음사, 1989) 시집 ≪매혹≫(청하, 1989) 시집 ≪남몰래 흐르는 눈물≫(문학과지성사, 1995) 시집 ≪고래는 명상가≫(민음사, 1993) 시집 ≪그늘 반근≫(문학과지성사, 2000) 시집 ≪누군가 다녀갔듯이≫(문학과지성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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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북 선산(善山) 출생의 동양화가이자 미술평론가·한국미술사학자·수필가·교육자·장정가로, 호는 근원(近園)·검려(黔驢)·우산(牛山)·노시산방주인(老枾山房主人)·벽루산인(碧樓山人)·반야초당주인(半野草堂主人)·매정(梅丁) 등이다. 1904년 2월 3일 경북 선산(善山)에서 농사를 지으며, 한약방을 운영하던 아버지 김이도(金以燾)와 어머니 김옥순(金玉順) 사이에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유아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 세 살 때 개울에서 본 송사리를 그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915년, 충북 영동에 있는 황간 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으며, 그 전까지는 부친에게서 천자문을 배웠다. 1920년 4월에 김용준은 경성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1923년, 20세 되던 해에 전통 화가와 양화가들이 운영하는 고려미술원(高麗美術院)의 청소년 대상 연구생 지도 수업에서 이마동(李馬銅), 구본웅(具本雄), 길진섭(吉鎭燮), 김주경(金周經) 등과 함께 미술 학습을 시작했다. 1924년에는 이종우가 운영하는 도화 교실에서 미술 수업을 받았는데, 같은 해 학생 신분으로 제 3회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동십자각(東十子閣)>(원제 <건설이냐 파괴냐>) 가 입선되어 화제가 되었다. 1925년에 중앙고보를 졸업하고, 이듬해 재학 시절 만났던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출신 진숙경(秦淑卿)과 결혼했다. 같은 해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해 김주경, 길진섭, 이마동과 동기가 되었다. 김용준은 표현파를 추구하는 유학생들의 모임인 백치사(百痴社)를 조직하기도 했으며, 여기서 소설가 이태준(李泰俊)을 만나 평생의 지기가 되었다. 1927년에는 당대 프로 예맹 이론가들을 비판하는 <화단 개조>, <프롤레타리아 미술 비판>을 발표해 임화 등의 반격을 받았으며, 이때 미술 비평가로서 국내 화단에 등단하기 시작했다. 1930년에는 도쿄미술학교 동문들과 함께 동미회(東美會)를 조직하고 대표가 되었고, 향토회를 조직하고 창립전에 <정물>, <풍경>, <꽃> 등을 출품했다. 또한 동문인 길진섭, 이마동 등과 백만양화회(白蠻洋畵會)를 조직하고 주도해 나갔으며, <백만양화회를 만들고>, <제9회 미전과 조선 화단> 등의 평문을 발표했다. 1931년 2월, 도쿄미술학교 졸업 작품으로 ‘달리는 기차가 전복되는 그림’을 그려 제출했으나 자본주의 사회의 부패상과 멸망상을 보여 주었다 해서 압수당하고, 이후 <여인상>으로 대체해 제출하고 졸업했다. 귀국해 중앙고보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제2회 향토회 전람회’, ‘제2회 서화협전(書?協展)’, ‘동미전(東美展)’ 등에 작품을 출품했으며, 미술 평론 <동미전과 녹향전(錄鄕展)>, <서화협전의 인상>, <미술에 나타난 곡선(曲線) 표징(表徵)>, <화단 일 년의 회고> 등의 글을 발표했다. 당시 한국 화단의 주요 논제였던 ‘조선 향토색론’을 앞장서서 이끌어 나갔는데, 민족 정서를 조선 향토색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특히 <회화로 나타나는 향토색의 음미>는 향토색과 관련된 대표적 글이라 할 수 있다. 1934년 도쿄미술학교 출신들과 함께 목일회(牧日會)를 조직하고, ‘제1회 목일회 전람회’에 <자화상>, <풍경> 등을 출품했다. 같은 해부터 보성고보 미술 교사로 재직하기 시작했다. ‘목일회전’의 후신인 ‘목시회(牧時會) 전람회’에 <오월>, <정물>, <소품> 등을 출품했다. 1930년대 중반 이후부터 소설가이자 지기였던 이태준과 더불어 골동 취미에 빠지기 시작해 전통 미술에 대한 애정을 평론에 담아냈다. 또 수필 <서울 사람 시골 사람>, <백치사(白痴舍)와 백귀제(白鬼祭)>를 발표하는 등 미술과 삶에 대한 수필을 이때부터 꾸준히 발표했고,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론>, <김만형(金晩炯) 군의 예술>(1942)과 같이 당대 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도 썼다. 1939년 3월에는 딸 석란을 입양했다. 같은 해 2월, 월간 문예지 ≪문장≫이 창간되면서, 길진섭과 함께 ≪문장≫의 표지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940년에 발표한 미술 평론 <전통에의 재음미>를 통해 조선 고전 전통의 부활을 제창했다. 1944년에는 결핵을 앓게 되어 성북동 자택인 ‘노시산방(老枾山房, 당시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 65-2)’을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에게 넘겨주고 의정부로 이주했다. 해방 후 총 186명의 미술가들을 총괄한 최대 미술가 조직이었던 ‘조선 미술 건설 본부’에 참가해 동양화부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1946년 보성중학교 교사를 퇴직하고 서울대 회화과 교수로 취임했으며, 미술애호회에 참가했고 미술 평론 <명일의 조선 미술>을 발표했다. 1947년에는 <민족 문화 문제>, <광채 나는 전통> 등의 평문을 통해 식민 잔재 청산을 주장했다. 1948년 이후 잡지 ≪학풍(學風)≫에 다수의 수필을 기고하기 시작했고 표지화를 그렸다. 같은 해, 국대안 파동의 여파로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하고 동국대학교 교수로 취임했으며, 1949년 동국대학교 강당에서 ≪근원수필≫ 출판 기념회를 가졌고, 6월에는 ≪조선 미술 대요≫를 출간했다. 그리고 연이어 <고미술 계몽의 의의>, <국전의 인상>, <신사실파의 미>를 발표하는 등 전통 미술과 현대 미술뿐만 아니라 국전이라는 새로운 전시 체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드러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김용준은 석 달 후인 1950년 9월에 부인 진숙경과 딸 석란을 데리고 월북했다. 월북하자마자 그는 평양미술대학 교수에 취임했으며, 1951년에는 조선 미술가 동맹 조선화 분과 위원장과 조선 건축가 동맹 중앙위원을 지냈다. 1953에는 평양미술대학 교수를 사퇴하고 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취임했다. 이 무렵 미술사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하는 등 미술사학자로 활약했다. 1956년부터 고구려 고분 벽화 현지 조사 및 문헌 연구를 시작했고, 1957년 과학원 창립 5주년 기념 학술 보고회에서 이 연구를 발표해 조선 미술사학의 수준을 높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같은 해 소련에서 개최된 ‘세계 청년 학생 축전’에 수묵 채색화 <춤>을 출품해서 금메달을 수상했는데, 조선화의 고전으로 평가되었다. 1958년에 연구서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를 출간했다. 1962년에는 평양미술대학 예술학 부교수로 복직해 <조선화의 채색법> 등을 발표했고, ≪조선미술사≫와 ≪단원 김홍도≫를 출간하는 등 월북 이후에도 전통 미술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1967년 향년 64세로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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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외과의였던 아버지를 따라 춘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홉 살 때 부모님 곁을 떠나 서울로 유학 온 안규철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해 조각을 공부했으며, 1977년 졸업 후 『계간미술』에 들어가 7년간 기자로 일했다. 1985년 무렵 ‘현실과 발언’에 참여한 그는 당시의 기념비적 조각 흐름을 거스르는 미니어처 작업을 선보였으며, 1987년 서른셋의 나이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이듬해인 1988년 독일로 건너가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해 수학 중이던 1992년, 스페이스 샘터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미술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95년 귀국 이후 『사물들의 사이』, 『사소한 사건』, 『49개의 방』, 『무지개를 그리는 법』,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당신만을 위한 말』, 『사물의 뒷모습』 등의 개인전을 열고 국내외 여러 기획전, 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며 일상적 사물과 공간에 내재된 삶의 이면을 드러내는 작업을 발표하는 한편, 1997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저서로 『그림 없는 미술관』, 『그 남자의 가방』, 『아홉 마리 금붕어와 먼 곳의 물』, 『사물의 뒷모습』 등이, 역서로 『몸짓들: 현상학 시론』, 『진실의 색: 미술 분야의 다큐멘터리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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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기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웠다. 정악과 속악을 모두 공부했으며 KBS 주최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1등을 하면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서양음악과의 교류 및 다양한 창조 작업을 바탕으로 국악의 영역을 확대한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음악과 교수, 문화재전문위원, 하버드대학교 객원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광복60주년기념 문화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 연세대학교 특별초빙교수 등을 역임했고, 유니세프 문화예술인클럽 회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다. 1986년에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가야금 독주회를 열기도 했으며, 2001년 예술평론가 협회상, 2001년 제15회 예총 예술문화상 음악부문 대상, 2004년 호암상, 2006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2008년 일맥문화대상, 2010년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악보집으로는 황병기 가야금곡집인 『침향무』, 『비단길』, 『영목』, 『전설·산운』, 『밤의 소리』,『춘설·달하 노피곰』, 『시계탑·하마단』이 있고, 음반(CD)으로는 황병기 가야금곡집인 제1집 <침향무>, 제2집 <비단길>, 제3집 <미궁>, 제4집 <춘설>, 제5집 <달하 노피곰>, <황병기 초기 연주곡집>, <황병기 가야금 산조>가 있다. 또한 저서로는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1994), 『황병기와의 대화』(2001), 『가야금 선율에 흐르는 자유와 창조』(2008), 『오동 천년, 탄금 60년』(2009),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2012),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논어 백 가락』(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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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1년 대전에서 태어나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충남 홍성의 홍주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했으며, 서울에서 몇몇 잡지사와 출판사 편집장을 역임했다. 또한 울산에서 용접공으로도 일했고, 원양 어선 선원이 되어 바다로 나가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2000년 8월 학원에서 강의 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2년간 투병 생활을 했다. 그리고 2002년 9월,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저서로는 시집 『새를 쏘러 숲에 들다』와 산문집 『훔친 책 빌린 책 내 책』, 장편소설 『벌채상한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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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지은이)    정보 더보기
칼럼니스트, 안동 출생, 경북대 국문과 졸업. 남의 이야기 듣기를 즐겨 급기야 사람을 만나 이야기 듣는 것을 직업으로 삼게 됐다. 사람이 우주이며 한 인간의 생애 안에 가히 우주의 천변만화가 담겨 있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숱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지난 세기 초중반 한국 여자로 태어나 우리 역사의 우여곡절을 온몸으로 밀고 온 분들, 그들의 삶 앞에서 전율의 농도가 가장 컸다.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는 그 감동의 기록이다.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이 우리들의 가장 훌륭한 교과서가 된다. 과일이 서리를 맞아야 단맛이 돌고 향기를 풍기듯 인생도 고난 속에서 익어간다는 것을 믿는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이 지금 행복한 사람에겐 삶의 확장을, 지금 불행한 사람에겐 삶의 깊이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팔뚝이 잘린 사람 앞에선 손가락이 잘린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앞 세대가 몸부림치며 살아온 이야기가 뒤 세대의 가슴을 울리기를, 그 울분과 통한이 서로를 연대하고 위안하고 사랑하게 만들기를, 더불어 고통을 뚫고 나와 더 너그럽고 강인해진 분들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통찰해내기를 희망한다. 한때는 국어교사였다가 신문, 잡지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라진 잡지 《샘이 깊은 물》에서 인물 인터뷰의 매력에 눈떠 인터뷰 칼럼을 주로 써왔다. 펴낸 책으로 《김서령의 家》, 《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삶은 천천히 태어난다》, 《참외는 참 외롭다》 등이 있다. 2018년 10월, 향년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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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8년 전남 광주 출생으로, 사진가이자 전시기획자이다. 남들보다 늦게 사진을 시작해 한국 근대사의 흔적과 과정을 담아 재조명하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과를 수료하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전북 진안의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 관장 및 전주 서학동사진관 관장으로 있다. 「정미소」(2002), 「나는 이발소에 간다」(2004), 「근대화상회」(2010), 「낡은 방」(2012), 「남광주역, 마지막 풍경」(2019) 등 십여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고, 「계남마을 사람들」(2006), 「전라북도 근대학교 100년사」(2010), 「용담댐, 그리고 10년의 세월」(2010), 「보따리」(2012) 등 많은 전시를 기획했다. 펴낸 책으로 사진집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2013), 『삼천 원의 식사』(2014), 『빈방에 서다』(2015) 등 십여 권이 있고, 사진 산문집 『감자꽃』(2017)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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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복역한 지 20년 20일 만인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2006년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재직하였다. 저서로『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신영복의 엽서』,『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청구회 추억』,『변방을 찾아서』,『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더불어숲-신영복의 세계기행』,『처음처럼-신영복의 언약』,『신영복(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등이 있으며, 역서로 『외국무역과 국민경제』, 『사람아 아, 사람아!』, 『노신전』(공역), 『중국역대시가선집』(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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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엮은이)    정보 더보기
이름에 ‘자유’가 들어가는 것에 반해, 기업체 홍보실을 그만두고 자유기고가가 되었다. 여러 매체에 글을 쓰는 자유기고가로, 편집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2016년 현재는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의 관장으로 전시기획을 포함한 류가헌의 살림을 관장하고 있다. 문화와 그 주변부에 관심을 두고, 일상 속에서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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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꽃이 지고 나면 꽃이 진 자리마다 녹색의 탱자 열매가 별처럼 수북하게 열렸다. 그 별들이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무슨 기적처럼, 작은 황금빛 태양이 되어 탱자나무 가지마다 가득 떠올랐다. 어느 누가 저렇게 많은 태양을 한꺼번에 떠올릴 수 있단 말인가?
― 오규원, 「탱자나무의 시절」


사과의 물리적 형태가 점점 눈앞에서 사라진다. 스미는 과즙에 몸이 환호한다.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님을 감지한다. 마침내 드러나는 두 개의 사과씨! 낙담도 회한도 고독도 단숨에 제압하는 핵! 이 씨앗이 사랑으로 미쳐 다시 한 번 사과로 환원되는 날이 올까……. 작은 생명을 오래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은 평화다. 신비다. 명백한 행복이다.
― 김서령, 「사과」


늦은 아침, 밥을 먹겠다고 부엌으로 다가가 문득 식탁을 허리띠만 한 리본으로 묶어놓고 있는 햇빛 자락을 보았습니다. 도화지 한 장으로도 다 가릴 수 있는 쪽창문 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 내 삶을 내내 묶는 한 아름다운 띠가 되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 장석남, 「아주 조그만 평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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