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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6550029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전태일은 살아 있다|기획의 말|4
지금은 여행 중|강윤화|11
영희의 조건|김경은|25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김남일|39
그건 아니야, 오빠|김도언|59
태일돌멩|김종광|73
지르 자자! 찌찌!|김하경|85
게으름뱅이 형|손홍규|109
은지들|윤이형|123
화이바|윤정모|139
전태일이 밥 먹여주냐|이시백|155
비명|이재웅|169
어떤 순간|정도상|183
서울, 기차|조해진|199
배|최용탁|213
……그 뒤,|한상준|227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우리는 물론 이 무덤의 소유권은 끝내 인수하지 못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마지막 남은 이 0.7평 공간은 마지막까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며 싸운 이 토끼의 ‘소유’라는 걸 인정해주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이 토끼 무덤 주변을 빙 둘러 놀랄 만한 엔터모뉴멘트, 즉 오락기념물 지역으로 개발할 예정입니다. 보라, 여기 위대한 토끼가 잠들다. 날로 물질문명에 찌들어가는 현생인류의 영혼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목숨까지 바쳐가며 싸운 왼발잡이 토끼, 그가 있어 우리는 행복한 공생의 추억을 지닐 수 있게 되었노라. 만국의 토끼여, 단결하라! 단결하여 추억하라! 사실 실컷 추억하라고 하죠, 뭐. 추억하는 데 뭐 우리 돈이 듭니까. 걔네들 돈이 드는 거지, 큭! 안습, 큭! 아, 고맙습니다. 자꾸 고맙습니다. 토끼만이 아니죠. 눈앞에 벌써 전 세계 아이들이 부모 손을 끌고 달려오는 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엄마, 우리도 그 토끼 보러 가요. 슬픈 토끼, 슬픈 종족, 슬픈 추억!
―김남일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 중에서
설립자 겸 초대 이사장은 칠순 나이가 되었으며 장성한 자식들은 교장 자리와 이사장 자리를 요구하고 있다. 전교조 출신 교사들은 10년이 지나자 정말이지 대학 교수처럼 되어버렸다. 불성실한 대학 교수처럼! 혈기 방자하며 헌신적이던 이십대 청년 교사들은 불혹도 못되어 벌써 늙은 ‘꼰대’가 돼버렸다. 설립자가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던 행정실 사람들도 비리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가난하거나 불우하지도 않은데 입학하는 학생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얘기를 해야 독자들은 즐거워할 테다. 서로 싸우고 배신하고 뒤통수 치고 음모를 꾸미고 아옹다옹하고 매수하고 삼각관계 이상의 불륜 로맨스가 있고……. 다 있다. 걱정 마시고 기대하시라. 본격적인 이야기는 설립자의 큰아들이 2대 이사장에 오르면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바꿔나가는 소란으로부터 시작된다.
―김종광 「태일돌멩」 중에서
형은 정말 대단한 게으름뱅이예요. 말도 하기 싫어하거든요. 원하는 게 있으면 손가락을 까딱대지요. 이젠 하도 익숙해서 형이 뭘 원하는지 손짓만 보고도 알아요. 원래 말은 했어요. 작년 이맘때 형이 병원에서 집으로 실려 왔던 무렵에는요. 나는 형을 좀 혼내고 싶었어요. 엄마 말을 듣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니 이 꼴이 아니냐구요. 형한테 물었어요. 선생님도 자주 그러시잖아요.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나도 그렇게 물었죠. 형은 물고기처럼 웃었어요. 누운 꼴도 꼭 파닥대는 물고기 같았으니까요. 소리 없이 입을 뻐끔대더니 한다는 말이 글쎄 노동자라는 거예요. 기가 막혔어요. 뭐가 됐느냐고 물은 게 아니었는데. 선생님도 노동자가 뭔지 아시죠. 나는 노동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도 노동자라구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아니잖아요. 나도 알아요. 노동자는 더러워요. 늘 땀 냄새가 나요. 역겨운 냄새가 나요. 집에 오면 빈둥대요. 돈돈 못 벌구요. 싸움이나 하다 병원에 가구요. 선생님도 그러세요? 아니잖아요. 선생님도 노동자 맞다구요? 그럼 난 선생님은 안 될래요. 사장님이 될 거예요. 나는 좋은 사장님이 될 수 있어요. 형 같은 게으름뱅이를 일 잘하는 일꾼으로 만들 수 있어요. 선생님도 내가 좋은 반장이라고 하셨잖아요. 나 때문에 우리 반이 부지런한 반이 되었다구요.
―손홍규 「게으름뱅이 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