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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명사에세이 > 문인에세이
· ISBN : 9788997454020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12-09-07
책 소개
목차
권두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006
기어이 사랑이라 부르는 기억들 / 김 훈…008
부치지 못한 편지 / 김인숙…020
그 여자 / 김용택…036
완벽한 사랑의 내부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 전경린…046
내 영혼을 자유롭게 해준 그대여 / 박수영…066
기억 속의 사랑 / 공선옥…084
‘영혼의 변명’과 ‘진실한 사랑’의 이중주 / 김갑수…100
오래된 사랑 / 유용주…118
달에서 나눈 얘기 / 윤대녕…134
달아난 사랑을 위한 발라드 / 윤광준…150
Do it for Love /이상은…166
책 읽어주는 남자 / 정길연…180
사랑은 미친 짓이다 / 최재봉…196
사랑이라니…… / 하성란…212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사랑 / 함정임…232
‘유일한 사랑’이라는 말에 깃든 함정 / 박범신…250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 / 이윤기…262
epilogue 사랑은 운명과도 같은 것…278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사랑을 묘사하지 못한다. 늘 말이 막혀서 써지지가 않는다. 불륜이건 합륜(이런 말이 있는가?)이건 치정이건 순정이건 다 똑같다. 거기에 언어를 들이댈 수가 없다.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사랑도 나에게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전달되거나 설명되지 않고 다만 경험될 뿐일 것이다. 경험될 뿐, 전달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낙원은 그 지옥의 다른 이름일 터이다.
내 빈곤한 ‘사랑’의 메모장은 거기서 끝나 있다. 더 이상의 단어는 적혀 있지 않다. ‘관능’이라고 연필로 썼다가 지워버린 흔적이 있다. 아마도, 닿아지지 않는 관능의 슬픔으로 그 글자들을 지웠을 것이다. 너의 관능과 나의 관능 사이의 거리를 들여다보면서 그 두 글자를 지우개로 뭉개버렸을 것이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과 모든, 참혹한 결핍들을 모조리 사랑이라고 부른다.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김훈 <기어이 사랑이라 부르는 기억들> 중에서
어느 봄날 쓴 편지인 듯합니다. 부치지 않은 편지가, 정리되지 않은 서랍 속에서 우연히 발견되듯, 삭제하지 않은 편지 파일이 우연찮게도 컴퓨터 문서함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사랑이 삶을 얼마나 많이, 오래 끌어안고 있을 수 있습니까? 반대로 삶은 사랑을 얼마나 오래 끌어안아줄 수 있습니까? 오래 전에는 그 두 단어를 분리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과 정염과 열정과 상처와 통곡과 오르가즘과 추락, 그 모든 단어들을 또한 사랑과 삶이라는 단어와 분리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실은 냉정한 것이 어느 쪽인지, 사랑인지 아니면 삶인지. 그 차가운 손이 어느 쪽의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김인숙 <부치지 못한 편지> 중에서
그 옛날 옆 마을에 살았던 그 여자, 열아홉 꽃 같았던 그 여자, 생각하면 아 바로 내 첫사랑 아니겠는가……. 지금도 생각하면 저녁 굴뚝에서 포근하고 아스라하게 연기 솟아오르듯 떠오르는 그 풋풋한 기억과 얼굴은 젊은 날의 잊히지 않는 사랑이 아니겠는가.
어두운 밤에도 구비 구비 하얗게 살아나던 길, 달이 뜨면 뽀얗게 떠 보이는, 적막하고 다정한 길이 늘 펼쳐졌답니다. 해 저물고 바람 불면 바람 따라 길 따라 하얗게 춤을 추던 개망초 꽃, 그리고 해맑은 풀잎들. 그 길은 슬프고 외롭고 쓸쓸하고 그리고 정다운 길입니다. 아버지들이 하얀 달빛을 받으며 나락을 져 나르던 길이며, 어머니들이 애기 업고 머리에 곡식을 여 나르던 길입니다. 내 누이들이 돈 벌러 가던 길이며, 동무들이 밤도망을 치던 길입니다. 어머니들이 울면서 자식들을 떠나보내고 눈물로 자식들을 기다리던 길입니다. 꽃길입니다. 서러운 눈물 뿌리던 길입니다. 기쁨의 길입니다. 그 여자를 만나러 가는 내 사랑의 길이기도 합니다. 김용택 <그 여자> 중에서